52일. 가난이 가르쳐 준 것

by 한톨

가난하게 자라진 않았다. 시골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까닭에 가난함 또는 부유함으로 누군가를 홀대하거나 특별히 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거나, 정말 부자라고 하더라도 구태여 자랑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특히 초등학교 때는 같은 반인 아이들이 열 명을 겨우 넘겨서 적어도 집안이 어떠하다고 해서 차별하거나 차별받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 이유에서 어려서부터 가난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집이 부유하거나 그런 편은 아니었다. 타고나기를 물욕이 없어서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거나 한 적이 없었던 탓에 가난함을 느낄 만한 이유가 아예 없었고, 어려서부터 사회성이 모자란 탓에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뭔가를 사달라고 하거나 유행을 따라가고 싶어 비싼 옷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돈에 대해 참 둔했다. 가난함도 모르고 부유함도 모르는 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부터 돈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대학교 시절부터 돈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가기 전까지만 해도 학교와 집만 오고 갔고, 군것질을 즐기는 편도 아니라 학교에서 매점조차 다니지 않은 까닭에 설날에 받은 용돈을 연말까지 쥐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학생이 되고 나니 돈이 필요했다.


돈은 곧 모든 것이고, 돈은 “주조된 자유”이고, 돈은 없으면 불행한 것이 됐다.


그래도 대학생 시절엔 그냥저냥 살 만했다. 돈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굉장히 우울한 탓에 돈 같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우울함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면서 돈이 필요해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여 돈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거나 그러진 않았다. 다만, 돈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시작했다.

돈이 있으면 하고픈 일을 모두 할 수 있었다. 카페에 가더라도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편의점에 가더라도 값을 개의치 않고 먹고자 하는 음식을 살 수 있었다. 굉장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를 통해 나는 돈이 중요하다는 걸 점차 깨달아갔다.


가난이 목을 옥죄기 시작한 건, 대학교를 자퇴하고 나서 혼자 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취업했다는 이유로 고향을 떠나 연고 없는 타지에 둥지를 텄으나 얼마 안 가 퇴사하고 나서부터 돈이 궁해지기 시작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곧 돈이었다. 특히 식비가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엔 집에서, 대학생일 적엔 기숙사에서 끼니를 줘서 식비가 이만큼 많이 드는 줄은 결코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먹지 않고 있으면 돈이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 안 먹을 수 없었다.

식비 다음은 월세나 그와 같은 고정지출, 그러고 그다음은 사람들 만날 때 쓰는 돈, 그다음은 옷이나 멋을 부리는데 쓰고픈 돈. 마치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처럼 돈을 쓰는 데에도 단계가 있었고, 그 단계마다 반드시 써야 하는 돈이 있다는 걸 가난하게 살며 깨달았다.


이 사회에서 혼자 서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야 있지만, 나는 돈이 없어서 너무 불행했다. 그래서 돈 없이 살고 싶진 않고, 하다못해 돈이 없어서 굶어 죽고 싶진 않다.


그런 절절한 욕구를 젊은 시절 겪은 가난함이 가르쳐줬다. 여러모로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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