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일. 꺼려지는 사람

by 한톨

만나기 꺼려지는 사람이 있다. 두 분류가 있다.


하나는 외모에서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상이 좋지 못한 사람. 잘생겼거나 예쁘거나 그런 사람만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못생겨도 호감을 주는 외모가 있고 잘생겨도 호감을 전혀 주지 못하는 외모가 있다.

경험칙에 따르면 눈을 마주할 때 싸한 느낌이 오는 사람은 내게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내게 항상 피해를 끼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사람은 꺼려지게 된다.

그런 느낌을 주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잊히기도 했으니까. 다만 외모가 주는 느낌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 사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느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할 것이고, 그 평가를 소홀히 대할 순 없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나의 직관이기에.


나는 그 직관과 경험칙을 믿는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꺼려지거나 그런가 하는 기준이 있는가? 그건 아니다. 그냥 내 느낌이다. 기준은 따로 없다. 굳이 만들고 싶지 않다. 만날 때 느낌이 별로라면 그냥 별로인 게다. 다른 이유는 없다.

어릴 때는 누군가를 이유 없이 싫어할 수 없다고 믿었고, 그래서 내가 미움받는 게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다 자라고 나니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 이유나 그런 게 없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굳어가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데에 이유가 있어야 할까? 이유야 있으면 좋겠지만 대개 이유 같은 건 없다.


다른 하나는 만날 때마다 똑같은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이다. 어른이 되고 나니까 날마다 만나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지 못하겠다. 사적으로 친하다고 말할 만한 사람은 날마다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만나는 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대개 1달 내지 여러 달이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같은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이 있다. 내가 뭐라고 말해도 듣는 척은 하지만 결코 바꾸지 않는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질린다.

물론 내가 건넨 말이 해결책이 될 순 없다. 그러나 바꿔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항상 똑같은 푸념만 늘어놓는 사람이 질린 건 사실이다. 그런 사람과 구태여 시간 내서 만나고 싶지 않다.

누구나 고민은 있지만, 그것이 늘 똑같은 고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고민을 풀면 다른 고민이 나타나는 식으로 가야 한다. 항상 똑같은 고민을 털어놓고 그에 대해 동정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나는 싫다. 짜증 날 만큼 싫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처럼 같은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만나기 꺼려지는 것이 인간관계를 대하는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올바르다’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진심을 숨기고 싶진 않다.

나는 언어에 사로잡히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면, 그 인간은 더는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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