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 난 그대로인데

by 한톨

나이가 한두 살 늘어날 때마다 내가 바뀌었다는 느낌은 없지만, 서른 살에 다가갈수록 한두 살 먹는 게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나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건 점점 늘어난다. 그것도 당연히 원해서 가끔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70세 노인이 한 인터뷰를 봤다. 젊은 기자가 묻는다. “이제 70살인데 느낌이 어떤가요?”라고. 그러자 노인은 “똑같아요.” 젊은이가 더욱 집요하게 묻자 노인은 웃는다. “69살일 때랑 똑같아요.”라고 노인은 말한다. 글이 끝나자 언제나 그랬듯 나이 듦을 주제로 댓글이 쌓이기 시작하고 어떤 댓글이 눈에 들었다. “사실 나는 그대로인데 나이가 먹어 가면 주변 눈치를 보게 된다.”라거나, “난 변한 게 없는데 사람들이 날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라거나.


퍽 공감 가는 말이다. 특히 서른 살이 다가올수록 그렇게 느낀다. 이십 대에는 몰랐다. 이십 대는 뭐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워서 더 자유로운 느낌이 있다. 그런 이십 대가 끝나가고 삼십 대부터는 이름만 다를 뿐, 어떤 책임감이 생긴다. 난 그대로인데 짐이 하나둘 생기는 셈이다. 어쩌면 그 짐에 눌려서 내 삶을 살아가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싶진 않다. 늙고 싶은 사람이 없듯이 남이 내게 거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고 싶진 않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누군가 내게 거는 기대가 갈수록 당연해지고 있다.

나는 무언가 되어야만 하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럴 수 있다. 바라던 바이다. 나는 무언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바뀐 게 없다.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남들은 내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는데, 가끔은 어린 시절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거울을 볼 때 말곤 내 모습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늙어가는 몸에 갇힌 어린 영혼이야말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늙지 않지만 우리는 늙을 수밖에 없다. 몸이 늙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흔히 하는 말로 ‘동안’이라고 하더라도 나이는 줄어들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보는 기준은 결코 어려지지 않는다.


영영 어린이로 남거나 그러고 싶진 않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내게 여유를 주었으면 좋겠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고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들은 상식이라고 일컫는 기준에 맞춰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깎아내린다.


난 그대로다. 사실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철들지 못했다. 여러 경험을 한 덕분에 어릴 때처럼 내 멋대로 굴진 않지만 그것만 빼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르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나의 영혼은 거의 녹슬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영영 녹슬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밝기를 머금고 있을 테다.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다. 내 외모나 나이 따위로 내가 쓰러져 가는 나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엔 쓰러질 거라고. 언젠가는 죽을 거라고.

나도 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그렇다고 내가 늙어간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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