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받는 일을 즐기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주면 “그것밖에 안 줘?”라며 시큰둥한 척했다. 그래도 어릴 때는 어린아이라는 특권 덕분에 시큰둥하게 굴어도 관심을 주는 어른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까 시큰둥하게 굴면 더는 관심을 받지 못한다.
더는 아이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어른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누군가 내게 관심을 보이면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관심받는 일을 즐겼으나 입으론 싫다고 말했다. 자존심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랬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니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요 근래부터 누군가 내게 관심 주는 일을 달갑게 여기기 시작했다.
원래는 부담스러웠다. 특히 어렵게 대해야 하는 사람이 주는 관심은 부담스러운 걸 넘어서 싫었다. 예를 들면, 직장 상사나 학교 선배 따위가 아랫사람에게 으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이 싫었다. 억지로 웃지도 않을 만큼 사회성이 없었고, 불편한 사람이 내게 관심을 보이면 배가 아프던 시절엔 정말로 관심받는 일이 싫었다.
그러나 서른에 가까운 나이가 되니까 오히려 관심받는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내게 건네는 관심도 반갑게 받고 있다. 지금은 내게 관심을 보이는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뿌리 박여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라든가, “난 특별하지 않다”라든가. 애써 무시하던 진실을 맞닥뜨리고 나니 상대가 누구든지 나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고맙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관심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난 누군가를 쉽게 좋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이 내게 관심 갖는 상황이 심지어는 두려워졌다. 조금 더 두려워지면 싫어질지도 모르겠다.
낯선 관심, 다시 말해 낯선 이가 내게 건네는 관심은 좋다. 싫다고? 전혀! 아주 좋다.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고, 나도 그에 따라 반갑게 맞이하겠다. 설령 상대가 보이는 반응이 뜨뜻미지근할지라도 나는 반갑게 대하겠다.
그러나 원하는 관심은 불편하다. 구태여 어린 시절과 겨뤄 보자면 상황이 뒤집혔다. 어린 시절엔 좋아하는 사람이 주는 관심만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것만 불편하다. 그 또한 어른이 되어간다는 신호일까.
마냥 좋게 생각하긴 어려운 문제다. 누군가에게 관심받는 일은 즐거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관심 갖는 일은 두려워지고 있다. 특히 나는 호감이 두렵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는 게 인간관계에서 가장 두렵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두려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차라리 낯선 관심을 두려워하고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면 좋겠다. 내게 꼬리가 있다면 마땅히 흔들며 다가갈 사람을 온새미로 좋아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