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일부터
※본문이 따로 있습니다. 본문이 궁금하다면, 하단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매일 글쓰기를 합니다. 일주일간 쓴 것 중 마음에 드는 문장을 뽑아 올립니다.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세요!
> 작가인 ‘나’와 주인공은 아예 다른 인물이다. 신과 내가 완전히 다른 인물인 것처럼 그러하다.
>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겠으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기로 하였다. 그게 바로 글쓰기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더 발전한다면, 글을 통해 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힘들더라도 더 해야 한다. 때로는 효율적이지 못할지라도, 해야 한다. 정말로 그냥 해야 한다. 조건을 달지 않고, 이 길로 나아가기로 했다면 나는 노력해야 한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 내가 작가가 되기로 하였다면, 나는 글쓰기를 하고 또 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내가 어떻게 쓰겠다고 마음먹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글은 항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글감은, 그러니까 내가 글을 쓰기 전에 생각했던 어떤 내용이나 설정 따위는, 씨앗 같다. 나는 씨앗을 하나 골라 땅에 심는다. 그러나 줄기가 어느 방향으로 자랄지는 모른다. 분명 태양을 향해 자라겠으나 그게 북쪽을 향할지 남쪽을 향할지, 동남쪽일지 북서쪽일지 난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까지 통제하려고 드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글을 망쳤다. 줄기가 나아가는 방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줄기를 틀었고, 그래서 글감, 씨앗이 말라죽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 결론은 이러하다. 씨앗이 생겼다면 기쁜 마음으로 종이에 옮기자. 다만 심었다면, 즉 시작했다면 그때부턴 글이 마음대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최초의 이미지나 인상 따위는 어딘가에 적어놓아도 좋으나, 그것 때문에 글을 억지로 이미지에 끼워 맞추면 안 된다.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 예술은 참 어렵고 묘해서 더 매력 있다. 공학이었다면, 머릿속 설계도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유효할 터이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다. 머릿속,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따라야 한다. 그것을 무의식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좀 아쉽다. 바다를 바다라고 부르는 것처럼, 참 아쉽다. 나는 무의식이 바다처럼 넓다고 생각한다. 혹은 우주처럼 깊다고. 내게 무의식은 바다나 우주다. 인간의 의식은, 육체가 우주 속 지구에 떠있는 것처럼, 무의식 위에 떠다니는 것이다.
> 나는 지금 2,000 단어를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정말로 그렇다. 그만큼 노력했으나 39 단어밖에 더 쓰지 못했다. 고통스럽다. 그만두고 싶다.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가. 이걸 해도 내게 가망이 있는가. 차라리 다른 일을……. 아니다. 난 그렇지 않다. 난 나를 믿는다. 난 이걸로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성공해야 한다.
> 나는 집단생활이 싫다. 좋았던 기억이 없다. 결혼이나 작은 관계는 얼마든지 좋다. 펄쩍 뛰도록 좋다. 그러나 집단생활, 위계 있는 사회생활 그딴 건 너무 싫다. 위계 있는 천국에 가느니 질서 없는 지옥에 가는 편이 낫다.
> 재능은 태어나지만, 실력은 다듬어진다. 재능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 내가 생각하기에, 예술 및 체육 분야는 재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분야 같다. 다른 분야 또한 마찬가지이나, 예체능 분야는 유독 그것이 심하다. 재능이 아예 없으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이 예체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믿으며 예술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 “나는 하면 할 수 있다"라는 그것 때문에 일을 미루고 미루고 있다. 성공을 뒤로 계속 미루고 있다. 마치 성공이 저금통에 넣은 동전처럼, 내가 원하는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건 잘못이다. 성공은 그렇지 않다. 성공은 보물이다. 찾고 또 찾아야지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갖고 태어난 사람은 가진 것만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통해 그들이 잃는 것도 많다. 그들은 없어본 적이 없다. 배고팠던 적이 없는 사람은 굶주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할 수 있다. 스스로 굶주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 가끔가다 보면 인생이라는 건, 밤하늘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는 달과 우리네 인간의 모습은 똑 닮았다. 그저 운이다. 그것이 그곳에 있을 확률은 운이다. 그걸 운명이라 부르든, 우연이라 부르든, 달라지는 건 없다. 그것이 그곳에 있다는 것,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은, 운명이든 우연이든, 현실일 따름이다.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듯 우리네 인생은, 뭐라고 정의할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는 것 같다.
> 가끔은, 그냥 남을 믿는 것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빚보증을 서거나 돈에 관련한 일이 아니라면, 남을 무턱대고 믿는 것, “너니까 믿는다”라고 믿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속이 편하지 않을까. “너니까 믿는다”라고 말한 순간, 그 일에 대한 결과는 그 사람에게 달렸다. 물론 책임은 내가 져야 할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 나는 모든 일이 결국 지나가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참 느긋한 편이다. …… 누군가 나에게 합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화를 내거나, 그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내가 그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설득한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
> 만약 누군가 나를 화내게 할 작정으로 행동한다면, 나는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돈을 요구하는 강도에게 돈을 주는 것과 같다.
> 인생은 불확실하고,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런 인간이 만든 세상은 불완전함투성이다. 미완이 모여 더 큰 미완을 만드는 것. 결함이 있으나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 바로 그때, 우울증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나에 갇혀있다’는 느낌, 그런데 타인에겐 그저 구경거리일 뿐인, 그런 느낌.
>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 그러나 오로지 돈 때문에 글을 쓸 마음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돈만큼 의욕이 생기는 게 없는 건 사실이다. 돈은―돈을 벌겠다는 욕구는―엄청난 자극제다. 그래서 돈 때문이라도, 나는 글을 써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게 말하겠다.
> 내 안에 있는 그것은 주먹보다 작고 단단하다. 손을 꽉 쥐면 작지만 단단한 힘이 느껴진다. 그것보다 더 작고 더 단단한 어떤 것이 내면에 있다. 그것은 씨앗과 닮았다. 그러나 무형이다. 무형의 씨앗이라 어떤 힘으로도 부실 수 없다. 어떤 외적 힘도 그것을 부실 수 없다. 만약에 씨앗을 깨뜨리겠다고 나에게 압력을 가하여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 씨앗은 깨지지 않는다.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그 씨앗을 깰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질 뿐이다. …… 그 씨앗은 누구도 깰 수 없다. 그 씨앗을 깰 수 있는 이는 오로지 나뿐이다. 그러나 그 씨앗은 마치 암세포처럼, 나보다 생명이 길다. 그 씨앗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예술뿐이다. 그 씨앗을 후대에 전하는 것, 예술로 남기는 것, 그게 내 사명이 아닐까 싶다.
>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조건 다는 일을 좋아하나, 보다 현명하고 자신감까지 있는 사람은 조건을 달지 않고 간결하게 말하는 것 같다.
> 나는 전체 판을 보고, 판을 바꾸는 법을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발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어떤 문제를 풀더라도, 쉽거나 정석대로 푸는 건 흥미가 없다. 기발해야 한다.
> 나는 무엇이든 원리를 아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한다. 원리만 안다면, 무엇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를 파악하는 일에 본능적으로 매달린다. 어떤 일을 하든 그렇다.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나면, 이후부터 내가 하는 일은 단순 반복 작업이 아니라 창의적인 일이 된다. 그러나 경험상, 원리를 파악하기란 어렵고 파악을 한다고 하더라도 변형시켜 일에 적용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나는 원리를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걸 선호한다. 다짜고짜 정답을 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리를 분석하고 나서 답을 아는 걸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