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산책 5

by 한톨

※본문이 따로 있습니다. 본문이 궁금하다면, 하단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매일 글쓰기를 합니다. 일주일간 쓴 것 중 마음에 드는 문장을 뽑아 올립니다.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세요!


> 글쓰기를 며칠 안 했더니 머리가 굳은 느낌이다. 키보드를 두들기는 손가락이 스탭 꼬인 댄서의 발놀림처럼 계속 머뭇거리고 있다. 멈추고 있다. 그것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 소설은, 교훈보단 재미가 더 중요하다. 개연성보단 흥미를 더 높게 평가해야 하는 영역이다. 비로소 나는 소설과 글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소설은 글 중 일부이나, 내가 쓰는 글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의 최종 보스다. 끝판왕이다. 그렇기 때문에 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나를 이겨내야 한다.


> 오늘 분명 멋진 꿈을 꾸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오로지 감정, 그때 느꼈던 감각만 추억처럼 남아있다. 만지면 사라지는 먼지 같은 추억처럼. 그래서 섣불리 들여다 보기도 겁나지만, 들여다본다고 해서 뭐가 있는 건 아니다.


> “여기 엄청난 게 있었어!” 하고 소리치며 꿈에 다가가지만, 들추면 꿈은 사라진다. 아무것도 없다. 오늘 꾼 꿈이 그런 것이었다. 정말 엄청난 것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면 누구도 보지 못할 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때때로 나는 나조차 어떻게 떠올렸는지 알 수 없는 꿈을 꿀 때가 있다. 대체로 그런 내용은 어떤 영화 속 장면인데, 내가 기억하기로 이 세상에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그건 분명 내가 만들어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장면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생각한다. “이걸 만들어 낸다면 대박 나겠어!” 그러나 꿈에서 깨어나면 장면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극장에 나서면 영화의 내용을 모두 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나는 어느 순간에는 극장을 나와야 한다. 종일 꿈만 꾸며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런 경험, 문자 그대로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경험이 나로 하여금 내가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더 나아가 내가 가치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그건 참 기쁜 일이다. 일어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겠지만, 나는 자면서 눈물을 흘린다. 안대가 축축이 젖어있다. 꿈이 실재했음을 증언하는 건, 안대의 습기와 잡으면 으스러지는 내면의 감각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꿈이 실재했고,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 있다고 확신한다.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그리고 가능성을 좀 포기하기로 했다. 내가 나로 산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일상 속에 부유하는 특정 존재가 될 뿐이다. 내가 완전히 나일 수는 없으나, 나의 모든 것은 타인과 세상이 보기에, 나의 행동과 외면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건 심신미약과 같은 이유가 아니다. 나는 때로는 내가 아닐 수도 있으나, 그런 내가 아닌 내가 ‘좋은’ 나도 아니고 ‘싫은’ 나도 아니다. 그건 부정적이지도 않고 긍정적이지도 않은 어떤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내가 모르는 나의 어떤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의식’으로 뭉뚱그려 표현하기엔 어려운 부분이다.


> 나이를 먹으니까 진실은 진실로, 거짓은 거짓으로 남겨두는 것이 진정한 진실임을 깨닫는다. 거짓말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터이다. 예를 들면, 취직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무언가를 정말 얻어야 하는 상황에선 그렇다. 때로는 진실을 지키고 양심을 앞세우는 일이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진실보단 그럴듯한 사실을 원하기 때문이다.


> 온 우주가 나에게 덤빈다고 해도 내가 나를 지키고자 한다면,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다.


> 행복하게 살자.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행복하게 살자. 때로는 고집을 부리고, 때로는 고집을 꺾어가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에 가닿는 길이라고 믿는다. 물론 이러한 믿음도 언젠가는 바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영원한 건 없다. 영원한 건, 나밖에 없다. 그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일은 영원히 고쳐야 하는 소설을 쓰는 일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래야 하는 일.


> 성관계만을 위한 관계는 오로지 성적 쾌락만을 목적으로 한다. 나는 그런 관계를 일컬어 ‘둘이서 하는 자위행위’라고 하겠다. 그리고 오로지 돈만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도 있다. 그런 일은 돈만 받으면 된다.


> 불행은 날 외롭게 만들었고, 외로움은 나를 고립되게 만들었으나, 역설적으로 그들은 나에게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


> 탯줄에서 떨어진 순간, 나는 그냥 나로 존재한다. 그렇다. 나는 그냥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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