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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최초이기 때문에 어떤 기준이 된다. *난생처음 단식하던 날
> 깨달음에 감탄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그보다 더 가끔 “이걸 몰랐다고?”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깨달았으나 사탕을 삼킨 어린아이처럼 가만히 있는다.
>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 그리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렸을 때는 무슨 짓을 해도 관심받기 어려웠는데 글을 쓰니까 내게 관심 갖는 사람이 생겼다. 재밌다!
> 소설가는 돈 많이 버는 지인을 두고 부러워하는 동무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어떻게 생각하냐가 중요해”라는 흔해빠진 조언을 건네는 이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철학자나 사상가다. 소설가는 부러워하는 지인,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무에게, 더 재밌고, 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꺼내게 만드는 사람이다.
너무 옳게 생각하지 말자. 올바르게 얼개에 끼워 맞추려고 하지 말자.
> 나를 깨야 한다. 나를 깨부수어 독특한 감각을 일깨운다면 나는 소설가로 성공할 것이다.
> 지루함, 답답함은 글 쓰다 가끔 찾아오는 감정이다. 백수 동무와 같다. 이런 비유가 참 재밌다.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내면에 박혀 있는 보석을 조금씩 보여주는 기분.
> '물론 나도 알지만’은,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나도 알고 있지만 내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이다. ‘물론’은 나도 그렇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독자를 무시하는 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물론’이란 부사를 즐겨 쓴다. 진짜 그렇다. 그런 말을 조심히 써야겠다.
>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있지는 않다. 종일 뭔가 하겠다고 다짐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뭔가를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막상 뭔가를 하지 않으나 “오늘 무엇을 하고 또 뭘 하고” 하며 따지고 또 따진다. 그럼에도 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갖질 않는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나는 그렇다.
> 얼마 전 글을 쓰다가 깨달았다. …… “나는 무대로 나가면 안 돼!” “무대 뒤에 있어야 해!” 그렇다. 나는 감독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무대에서 활동한다. 내가 무대로 나가는 순간 관객은 나에게 야유를 퍼부으며 자리를 뜰 것이다. 나는 무대로 나가면 안 된다. 아무리 답답하고 창피하고 속이 타고 부끄러워도 무대로 내가 나가면 안 된다. 그 순간 공연은 끝이 난다. 내가 무대에 나갈 수 있는 순간은 독자가 책을 덮었을 때다. 독자가 책을 펴면 나는 무대 뒤로 가야 한다. 그리고 절대 나오지 말아야 한다. 숨도 쉬지 말고, 인물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 내 인생은 재미가 없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살아있다면 쓸 만한 이야기는 갖고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내게 온다면, 그 사람은 그의 나이만큼 이야기보따리를 갖고 오는 셈이다.
> ‘감정이 앞서고 이성이 뒤따른다.’ 내 문학의 방향성이 담겨있는 말이다.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면 독자의 이성이 알아서 설명할 것이다. 감정이 감동받았다면 이성은 값을 지불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작가로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글을 쓰겠다.
> 가망 없는 믿음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나는 그런 편이다. 힘들긴 하더라도 진실을 보고자 한다. 정말 힘들긴 하더라도.
> 도망치고 싶다. 회피하고 싶다. 내가 벌인 얼마 안 되는 일로부터 도망치고 싶고 회피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일을 벌어놓았다. 그것은 내게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인생의 등불이다. 그들이 없다면 나의 존재도 사그라진다. 그러나 그것이 난 두렵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 회피하고 싶다. 반딧불이처럼 정처 없이 떠돌고 싶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문명 세계로 가는 티켓이다. 내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공차에서 커피를 마시고, 버스를 타고, 노래방에 가고 하는 일은 모두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그러므로 내겐 돈이 필요하다.
>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있다. 공짜 점심도 있을 수 있다. 오로지 남을 위해 무료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만든다. 그것이 곧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을 넓은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 남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물을 주는 것이 곧 예술이다.
> 나는 언제나 나에게 어떤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먼 옛날 내가 어렸을 때, 수줍음 때문에 삼켰던 나의 행동부터 시작한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억제하기 시작했다. “튀지 말아야 해! 가만히 있어!” 넘쳐나는 끼를 갖고 있었으나, 독특한 시각을 지니고 있었으나 나는 가만히 있었다.
>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내게 학교 폭력 같은 사건은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건 그저 재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심하지도 않았다. 내가 겪었던 여러 사건들은 진짜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가게 만들었는가, 그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의 아픔을 외면하진 않는다. 그것이 과장된 아픔이든, 그렇지 않든, 난 정말 아팠으니까.
> 문학적 배변 활동은 그만두어야 한다. 나는 그 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힘들여서 썼다고 해도 그것이 배설물이라면 변기 물을 내려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상 의자는 나에게 변기나 다름없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던 최초에 내가 그런 목적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있는 울분을 글로 풀어내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썼던 글은 결코 소설이 아니다. 마음속에 있는 노폐물, 감정의 찌꺼기를 종이 위에 털어놓았을 뿐이다.
> 나를 감동시키는 글을 쓰면 된다. 똥을 힘들여 쌌다고 해서 똥 보고 감동하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내가 감동할 만한 글을 쓰자. 내가 보기에도, 내가 독자라고 해도 끝까지 읽을 만한 소설을 쓰자. 그거면 된다. 나를 독자로 정의하고 글을 쓰자. 나는 쉽게 질리니까. 웬만한 소설은 나를 흥분시키지 못하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위대한 작가들과 동급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나는 그들의 발톱 때다. 그만도 못하다. 절대 가르치려고 하지 말자. 나도 그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