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했다.
더 부드럽게 또는 더 무겁게 시작하려고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보다 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 다니게 됐다”라고 수동태로 말하며 나를 피해자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이번 퇴사는 오롯이 나의 결정이었고, 나는 내 의지대로 짐을 쌌다.
이유야 지어내면 서너 장의 보고서도 쓸 수 있겠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그냥 힘들어서 그만뒀다. 나는 퇴사를 자주 한다. 입사와 퇴사를 성실하게 거듭하다 보니 어느덧 서른이라는 상징적인 나이가 눈앞에 와 있다. 퇴사한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트랙 위를 달리다가 중간에 멈춰 서는 기분이다. 목적지까지 가던 도중에 홀로 궤도를 벗어나버린 듯한 고립감. 나만 빼고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계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외롭고, 때로는 배신감마저 든다.
그럼에도 나는 쓰기로 했다. 나에게 남았던, 혹은 남았어야 할 62일이라는 시간을 기록으로 채우기로 했다. 퇴사하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버텼을 그 시간만큼, 나는 나 자신을 온새미로 드러내는 데 쓰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기록은 네 가지 물줄기를 따라 흐른다. 먼저, 내가 왜 조직이라는 톱니바퀴에 맞물리지 못하는 부품이었는지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면접장에서 나를 '1급수'라 소개했던 오만한 허풍과, 정작 사회의 차가운 문법 앞에서는 절름발이처럼 절룩거려야 했던 무력함을 담았다. 1장부터 4장까지가 여기에 들어간다.
그다음은 시간을 역행해 나의 해묵은 기억들을 들춰본다. 군대에서의 귀가 조치, 자퇴라는 화끈한 도망, 그리고 죽을 결심조차 수치심에 가로막혀 연탄 대신 과자를 사 들고 울었던 비참한 밤들까지. 내가 왜 세상으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아왔는지 그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5장부터 9장까지 여기에 들어간다.
세 번째로는 나라는 장치의 사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남들보다 쉽게 지치고 예민한 감각의 블랙홀을 지닌 HSP(예민한 사람)로서, 기립성 저혈압이라는 지독한 동반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했다.10장부터 14장까지 여기에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다시 사회로 복귀하며 얻은 통찰과 삶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적었다. 인턴이라는 신분과 작가라는 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내 인생의 물길은 결국 내가 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여정이다. 15장부터 19장까지 여기에 들어간다.
세상이 나빴다거나 내가 못났다는 뻔한 이야기는 접어두려 한다. 다만 조금 많이 솔직해지고 싶다. 드러내기 부끄러운 말일지라도 가볍게, 지나가는 투로 툭툭 내뱉고 싶다.
인생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세상은 나를 부적합하다 말할지라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기록이 끝날 때쯤 나는 내가 왜 그토록 자주 멈춰 섰는지, 그리고 이제는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 그저 내가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이 이 일기의 시작이자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