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는 글] 장례식은 잔치처럼

시작은 설레지 않아도 좋습니다

by 한톨

흔히들 시작은 설레고 마지막은 슬프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언제나 그 정반대였다. 나에게 시작은 늘 아팠다. 새 학기가 다가오면 이유 없이 배가 아파 학교에 있는 동안 배를 부여잡아야 했고, 봄의 향기는 은근한 두려움을 품고 내 코로 스며들었다. 1급수의 예민함을 타고난 나에게 시작이란, 알 수 없는 탁류에 나를 던져야 하는 투항이었고 그 낯선 세계의 문법을 새로 익혀야 하는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이 좋다. 끝난다는 감각은 나를 설레게 한다. 62일 전, 나는 회사를 떠나며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책임으로부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부품으로만 대하던 차가운 공기로부터 벗어난 그 순간은 내 생애 가장 가벼운 비행이었다.


끝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 시작할 때는 서로의 가면만을 응시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 가면 뒤에 숨겨진 피로함과 마침내 찾아온 진심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나는 이 마지막을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기록의 끝은 내가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버티기만 했던 과거의 나'를 정중히 묻는 장례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득 나의 마지막, 즉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나의 장례식이 잔치처럼 치러지길 바란다. 내가 그럴싸하게 인생의 연극을 마친다면, 사람들은 내 죽음 앞에서 슬퍼하기보다 내가 남긴 문장들을 안주삼아 즐겁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62일간의 투쟁을 마친 지금, 나는 비로소 시작보다 설레는 마지막을 맞이한다. 이 일기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다시 낯선 길 위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시작이 다시 나를 아프게 하고, 배를 부여잡게 만들지라도 이제는 두렵지 않다. 나에게는 이 62일간 길어 올린 투명한 진실들이 있고, 세상의 부적합 판정에도 굴하지 않고 1급수의 수질을 지켜낸 단단한 마음의 근육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나는 삶을 즐기고 싶다. 끝이 주는 해방감을 만끽하며, 내 앞에 펼쳐질 또 다른 막간극을 향해 기꺼이 걸어가겠다. 비록 시작은 설레지 않을지라도, 그 끝에서 다시 만날 나만의 잔치를 기다리며.


잘 가라, 나의 방황하는 젊음아. 반갑다, 내가 스스로 고른 나의 물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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