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퇴사 후 스스로에게 허락했던 62일이라는 유예기간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처음 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떠난 곳에서 보냈어야할 그 시간만큼을 오롯이 나 자신을 대면하는 데 쓰겠노라 다짐했다. 조금 많이 솔직해지자던, 드러내기 부끄러운 말이라도 가볍게 툭 내뱉어보자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밤마다 나의 굴욕과 결핍을 문장으로 길어 올렸다.
돌아보면 이 62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나를 옥죄던 세상의 규격과 맞서 싸운 ‘투쟁기’였다. 1급수 인간이라는 오만한 자의식을 버리고, 기립성 저혈압을 앓는 나약한 육체를 인정하며, ‘부적합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작가라는 이름으로 덧칠해가는 치열한 과정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세상이 나빴다는 핑계도 대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나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회복했다.
인간은 이야기를 원하는 동물이다. 특히 퇴사를 한 사람은 자신을 설명할 그럴싸한 서사를 바란다. 월급이 적어서, 상사가 괴롭혀서, 일이 너무 많아서…. 하지만 그런 외적인 이유보다 더 본질적인 진실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했다’라는 사실이다. 뛸 수 없는 사람에게 조금만 더 뛰라고 말하는 격려가 때로는 가장 잔인한 폭력이 된다는 것을, 나는 몸소 겪으며 깨달았다. 인생은 마시멜로 하나를 더 얻기 위해 오늘을 참고 버티는 실험실이 아니다. 인생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온전히 살아내는 과정 그 자체여야 한다.
나는 이제 수동태로 살지 않기로 했다. 사회가 나를 조종하도록 내버려 두는 대신, 비록 흔들리고 절룩거릴지라도 내 발로 걷는 길을 택하겠다. 백수로 지냈던 시간 동안 마주한 무기력과 불안은 나에게 ‘진정한 오늘’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었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선이 아니며, 내일의 덤도 아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 내가 마시는 차의 온도와 내가 쓰는 문장의 밀도만이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
비록 나의 처지는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기간제와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학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끔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에 가끔은 어깨가 짓눌린다. 하지만 이제 1년은 다닐 만한 회사를 찾는 노력만큼이나, 평생을 함께할 나 자신과 화해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1급수 인간이 탁류 속에서도 고유한 색을 잃지 않는 법은,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물길을 스스로 내는 일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나간 일은 이미 지나갔다.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 수 없다. 나는 무엇을 하든 후회할 짓은 하고 싶지 않다. 뉘우칠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겠다. 최선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틀린 일이라도 하는 것이며, 최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루즈벨트의 말을 이정표 삼아 나는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62일간의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1급수 인간의 진짜 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이제 나의 궤도를 스스로 결정한다. 때로는 멈춰 서고, 때로는 멀리 돌아가더라도 그 모든 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내게 남은 시간에 감사하며, 나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겠다. 마지막까지 나는 삶을 즐기고 싶다. 마지막까지 가는 그 모든 길을 온새미로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