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개장을 부수다 -2

22년 11월에 쓴

by 한톨

2

시아는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였다. 세상과 끝 모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추수가 한창인 논에서 농부들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세상의 저편으로 끌려가는 듯하였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을까……. 차라리 바보로 태어났다면 좋으련만!” 마을길을 거닐며 시아는 중얼거렸다. 마을에 사는 남자들은 예외 없이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늙은이었으나 아들뻘 되는 장정도 여럿 보였다. 시아만이 소녀처럼 산책하고 있었다.

“나도 저들처럼 아버지를 닮아 갈까?” 눈을 질끈 감자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아는 아버지가 싫지는 않았으나 이상하리만치 아버지를 따라서 일하는 것이 싫었다. 아버지와 함께 집안일을 하거나 농사일을 할 때면 자신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여느 때처럼 집을 나와 산책하고 있었으나 마음이 뒤숭숭하였다.

개가 짖는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소리로 보아 하니 강아지였다. 시아는 발걸음을 돌렸다. 투덜거리듯 탈탈 소리 내는 거대한 농기계와 농부들의 간헐적 외침을 외면하며 강아지 우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강아지는 제대로 짖지도 못하였으나, 끈질기게 낑낑거렸다. 일꾼들의 소리가 잦아들자 앓는 소리가 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마을길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마당에 강아지가 있었다. 시아가 예상한 대로 개장에 갇혀 있었다. 강아지는 시아를 보자 짖기는커녕 꼬리를 흔들었다. 검붉은 아스팔트 도로와 달리 마당은 누런 빛을 띠었다.

개장은 잿빛 흙 위에 서있었다. 쇠다리는 기분 나쁜 회색이었는데, 손가락으로 훑으면 녹이 묻어나올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드문드문 녹이 슬었고 전체적으로 노르스름했다.

강아지가 갇혀 있는 공간은 녹슨 다리의 연장이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정육면체이자 가장 처참한 감옥이었다. 올려 놓고 까먹어 제때 치우지 못한 듯 보이는, 허름한 나무 판자가 지붕 역할을 하고 있었다. 녹슨 철사 사이로 노랗고 흰 발이 자꾸만 빠졌다. 그럼에도 강아지는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시아를 반겼다.

강아지와 마주보고 있는 면의 녹슨 철사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방금 벌어진 무화과처럼 붉은 혓바닥이 손가락을 마구 핥았다. 시아는 작게 미소지었다.

“왕!” 누군가 어깨를 툭 건들며 소리쳤다. 시아는 깜짝 놀라 손가락을 거두며 몸을 돌렸다. 강아지만큼 작은 남자아이가 서있었다. 남자아이는 수줍게 웃으며 시아를 올려다 보았다. 순간 시아는 남의 집 마당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아이에게 화낼 뻔 하였다.

“아저씨, 그 아저씨 맞죠?” 꼬마가 물었다. “무슨 아저씨?” 아저씨라고 불리는 게 어색하고 언짢았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개를 풀어주는 아저씨!”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숙여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하반신보다 키가 작은 사람과 대화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아는 그것이 좀 우스웠다. 그래서 미소를 지으며 꼬마 얼굴을 빤히 보았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붉고 건강한 기운이 얼굴을 감돌고, 무엇보다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우주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얼마간 황홀경에 빠졌다. 황홀경은 꼬마가 고개를 돌리자 사라졌다. “부끄러워요!”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와 꼬마의 말소리가 겹쳐 들렸다. 그러자 꼬마의 눈빛이 강아지의 그것과 닮았다고 느꼈다. “너희는 눈동자가 닮았구나! 사랑하면 닮는다는데…….” 문득 부모님이 생각났다. 서로를 닮아 서로를 제 몸처럼 아끼는, 다정하고 화목한 몸짓들. “너희도 닮았구나…….” 시아는 쓸쓸하게 입을 닫았다.

입을 앙다물고 있자 꼬마가 막대 사탕을 하나 건넸다. 복숭아맛이었다. “고마워.” 시아는 억지로 미소 지었다.

개장을 마주보고 계단에 걸터앉았다. 꼬마는 시아의 오른편에 앉았다. 시아는 저도 모르게 꼬마를 쓰다듬었다. 깜짝 놀라 손을 치우자 꼬마는 시아를 이상하게 보았다.

“몇 살이니?”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시아가 물었다. “일곱 살이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자신보다 열 살 많은 남자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혼자니?” 꼬마는 그렇다고 답하였다. 다들 농사일을 하러 갔다며 어린아이스러운 말투로 말하였다. “내가 널 안아봐도 되겠니?” 시아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꼬마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꼬마를 안은 순간, 시아는 자신을 보면 까닭 없이 미소 짓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마음이 아팠다. 꼬마는 품에서 막대를 가지고 장난쳤다. “자주 혼자 있니?” 꼬마는 고갯짓으로 답하였다. 품속에서 고개가 횡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외롭겠구나…….” 꼬마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건네는 말인지 시아는 알 수 없었다.

“아니에요. 해피가 있어서 좋아요.” 해피는 강아지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추측하였다. “해피랑 놀고 싶어요.” 꼬마가 움직이자 시아는 놓아주었다. 심장이 빠져나간 듯 공허하였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였다. “오! 무슨 노래에요?” ‘베토벤의 《운명》’이라고 답하자, 꼬마는 자동인형처럼 고갤 끄덕였다. “왜 그렇게 잘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이 음악뿐이라서 학교에 가면 휘파람만 연습한다고 답하였다. “음악을 좋아해요? 왜요?” 시아는 휘파람을 멈추었다.

“나도 모르겠어. 음악 선생님이 나를 아껴줘서 그런가?” 시아는 꼬마를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민들레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약하고 소중한 존재들.

“내가 네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시아는 꼬마를 보았다. 꼬마는 고갤 끄덕였다. “고마워! 정말 영광이야!” 그러자 꼬마가 물었다. “영광이 뭐예요?” 시아는 답하는 대신 웃어 보였다. 설명하기 어려울뿐더러, 설명을 한다고 해도 이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끼었다. 그런 자신이 어른과 닮았다고 생각하니 좀 우울해졌다.

우울함은 곧잘 분노로 변한다. 시아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으나, 갑자기 화가 났다. “나는 개장이 싫어!” 꼬마가 시아를 보았다. “개장은 비인간적이고,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그래, 묶어서 기르는 거면 나도 인정해. 개가 아무 데나 뛰쳐나가면 농작물을 망치니까.” 시아는 잠시 말을 끊고 거칠게 호흡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이해하기 어려워. 그럴 거면 개를 기르지 말지. 도대체 어른들은 왜 개를 기르는 걸까? 책임은 코딱지만큼도 지려고 하지 않으면서 왜 생명을 키우는 거지?”

“난 몰라요!” 꼬마가 소리쳤다. “아저씨가 무슨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해피가 왜 개장에서 사는지도 몰라요.”

뭐라고 답할지 잠시 생각하였다. “개장은 사라져야 해. 저렇게 여리고 약한 강아지는 풀어주는 게 이치에 맞아. 그게 옳은 세상이고.”

시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개장으로 다가갔다. “자물쇠가 있어요!” 꼬마가 소리쳤다. 꼬마는 마당 한가운데 서있었다. “열쇠가 어딨는지는 절대 말할 수 없어요! 아빠가 화낼 거에요…….”

시아는 꼬마에게 다가갔다. 꼬마는 막대 사탕을 물고 입을 비죽 내밀었다. 순간 꼬마의 얼굴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늙은 농부의 모습이 나타났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처들었다. “왜 그래요?” 꼬마가 물었다. 꼬마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늙은 농부가 되는 일은 시간 문제였다. 꼬마가 흔해빠진 농부가 되어 늙어 가리라고, 시아는 확신했다. ‘내가 구해주지 않으면 안 돼!’ 그러나 그럴 수 없어 퍽 우울해졌다.

꼬마를 외면하고 시아는 개장 근처로 가서 비탈길을 베개삼아 마당에 누웠다. 맑게 개인 하늘이 보였다. 하늘은 죄 없이 맑았다.

꼬마가 경고했다. “뭉개질 거에요!” 시아는 꽉 찬 물잔과 같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죽을지도 몰라요!” 꼬마가 절규했다. 시아는 눈을 떴다. 꼬마가 몸을 비비 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옳은가? 나는 올바른가? 내가 틀렸고 어른과 세상이 옳을 가능성은 없는가?’ 다시 눈을 감자 꼬마가 소리쳤다.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시아는 눈을 감은 채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떨구었다. “아저씬 바보 같아요! 고집쟁이야!” 꼬마가 목청 높여 떠들었다.

“바보가 될 용기가 없으면 천재가 될 수도 없어.” 시아가 중얼거렸다. 꼬마가 말의 뜻을 묻자 답하는 대신 꼬마와 눈을 마주하였다. 그저 맑기만한 얼굴이었다. 옳음과 올바르지 못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지만 그저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않는데, 그게 옳은 건지 모르겠다.” 또 그렇게 중얼거렸다. 꼬마는 묻기를 포기하였는지, 개장으로 다가가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강아지와 장난쳤다.

“내가 풀어줄까?” 꼬마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시아는 웃어 보였다. 꼬마는 고개를 저었으나, 그것은 본심이 아니었다. 시아가 개장에 다가가 자물쇠를 쥐고 흔들었다. 생각보다 단단했다. 몸을 숙여 자물쇠를 보고 헛웃었다. 고급진 은색 자물쇠가 조롱하는 듯 반짝거렸다. 고개를 떨구어 꼬마를 보자 갑자기 숨쉬기 어려울 만큼 가슴이 답답하였다. 꼬마의 모습에서 어쩌다 늙은 농부를 보았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꼬마는 그 농부의 자식이다. 아버지의 돈으로 술을 처먹은 괴팍한 농부! 늦둥이를 가졌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그게 몇 년 전이다.

“책임감.” 시아는 역겹다는 듯이 그것을 발음하였다. 하고픈 말이 있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 자물쇠가 걸린 듯하였고,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였다. “어른들은 왜 책임감이 없을까……. 사랑스러운 존재를 막 대하는 걸까…….”

“왜요? 우리 아빠는 우리 먹여 살리려고 매일 일하러 가는데…….” 꼬마는 물음인 줄 알았는지 그렇게 답하였다. 시아는 꼬마를 쓰다듬었다. 흰 막대를 물고 있는 꼬마의 모습에서 담배 문 늙은 농부가 나타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으나 잘 참아냈다.

그것은 물음의 형식이었으나 묻는 말은 아니었다. “내가 개장을 부숴줄까?” 꼬마는 고개를 저었다. 진심이었다. “혼나요! 쥐어뜰길 거에요!” 시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당을 훑었다. 쇠붙이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개장을 부술 만큼 단단한 쇠붙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정말로 할 거에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꼬마는 마당의 저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맙다! 고마워!” 시아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망치를 가지고 나타나자 꼬마가 말하였다. “이건 비밀이에요! 죽을 때까지요…….” 시아는 답하는 대신 엄지 하나를 추켜올렸다.

강아지가 요란하게 짖기 시작했다. “머리를 쥐어뜯길 거에요! 우리 아빠는 힘이 세요…….” 꼬마가 경고했으나 들은 체 하지 않고 시아는 손을 더욱 바삐 움직였다. 녹슬고 낡은 개장을 부수는 건 생각보다 쉬웠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가능하다면 이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을 지경이었다. 강아지는 곧장 꼬마에게 가서 안기었다. 겁을 먹었는지 바닥에 오줌을 지렸다.

“이제 좀 볼 만한데…….” 시아는 감탄하였다. 개장은 허물어졌고 최신식 자물쇠는 여전히 걸려 있었으나 그것은 반짝이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아를 조롱하고 있었다. “너 큰일 났다.”라고 자물쇠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광기 어린 시간이 지나갔다. 도구를 창고에 가져다 놓고 계단에 앉자 해피가 손가락을 마구 핥았다. 칭찬받는 기분이었다. “아저씨는 뭐가 되고 싶어요?” 꼬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아는 꼬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그것을 곧장 말하기 어려워하고 있다고 여겼다. “나는 별이 되고 싶어.” 꼬마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시아를 빤히 보았다. 시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엄지를 두 개 치켜세웠다. “나는 별이 되고 싶어. 길 가다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밤하늘에 떠있는 별이. 애매한 존재보다는 아련한 추억이 되고 싶어.”

“그렇다면 이건 전부 비밀이에요! 잊어줘요! 별을 보며 고맙다고 이야기 할게요……. 매일 밤마다 그럴 게요!” 시아는 꼬마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쓰다듬었다.

어느덧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다. 농기계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꼬마는 불안한지, 자꾸만 시아를 올려다 보았다. 그럴 때마다 시아는 웃어 보였다. 오직 강아지만이 무엇도 알지 못했고, 그래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시아는 자신에게도 강아지와 같은 때가 있었는지 되짚어보았다.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올바름도 잘못도 모르며, 모유를 먹고, 아버지에게 업혀 살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자기보다 한참 작은 시아를 품에 안은 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과, 시아를 어깨에 올려놓고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 시아의 모습…….

아버지는 가정을 위해 헌신하였고, 어머니 또한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그러나 시아는 그러지 못하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시아는 정말 불행할까, 아니면 불행해야 할까. 불행하게 보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겉돌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시아는 사고하였다.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이유와 꼬마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탕을 건네는 이유는 시아가 개장을 부순 이유와 어른들이 일하는 이유와 같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모두 생존의 방식이자 존재의 증명이고, 모든 존재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간다. 자기 자신이 믿는 올바름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정도의 차이가…….

시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의지가 느껴졌다. “아빠!” 트럭이 나타났다. 비탈길을 조심스레 기어 내려오는 모습은 익숙한 듯 자연스러웠다. 시아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고집쟁이라고 생각하였다. 세상에 둘도 없는 고집쟁이라고.

“아빠!” 꼬마가 제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꼬마를 안은 늙은 농부는 꼬마 꽁무니를 쫓아온 해피와 가만히 앉아 있는 시아를 갈마보았다.

시아는 일어서 비장한 각오로 읊조리듯 말하였다. “나는 남으로 사느니 나로 죽겠어.” 하지만 확신하진 못하였다. 필시 죽을 때까지 그러하리라.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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