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개장을 부수다 -1

2022년 11월에 쓴

by 한톨

1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쥐가 파먹은 듯”한 머리를 하고 있던 소년은 전신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았다. “모자를 쓰면 안 되겠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피아노 연주를 따라가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묻혔다. 얼굴 없는 아이들이 어머니를 관처럼 들고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게 들리는 듯했다.

시아는 투덜거렸다. “어쩔 수 있는 일은 대체 뭘까? 그런 게 있기나 할까?”

그럼에도 모자를 챙겨 집을 나섰다. 미용실에 가서 까만 회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군대 가세요?” 미용사가 물었다.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미용사가 말을 더 걸었다면 머리를 깎다 말고 미용실을 나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노련한 건지, 무심한 건지 미용사는 그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이발을 마치고 돈을 내자 뒤통수에 대고 소리칠 뿐이었다. “또 오세요!”

까까머리를 손바닥으로 빗었다. 들쭉날쭉한 머릿결이 느껴졌다. “다시 갈 일은 없겠다!” 모자를 눌러 쓰고 발걸음을 옮겼다.

“실내에서 모자 쓰는 건 예의가 아니야.” 전신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느 학교를 가든 정문에 가면 볼 수 있을 법한 거울이다. 직사각형에 금색 글씨가 하단에 박혀 있는 거울. “음악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었어……. 두 달 전에…….”

주먹을 꽉 쥐었다. 굳센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이 운명을 바꾸진 못하였다. 까닭 없이 슬퍼졌다. 시아는 자신을 죄수라고 생각하였다. 삐딱한 세상에서 너무 올바르게 태어난 죄로, 단두대에 오르고 있는 죄수.

계단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교장실은 3층이었다.

시아는 망설일 작정이었다. 3층으로 오르는 층계에서 한참 서있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교장 선생은 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3층 복도에 서서 골프인지 야구인지 알 수 없는 몸짓으로,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어?” 교장 선생은 다부진 체격에 노인치고 키가 몹시 큰 편이었는데, 층계 아래에서 보니 거인처럼 보였다. “학생, 왔군요.” 교장 선생은 아쉬운 듯 마지막으로 스윙을 한 번 하고 시아를 방으로 데려갔다.

대낮이라 그런지 방안이 환했다. “이런, 너무 밝죠?” 인상 쓰고 있는 시아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어두우면 잘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불을 키자니 전기가 아깝고…….”

자신보다 한 뼘 작은 노인을 시아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 있지 말고 거기 앉아요.” 교장 선생은 살짝 기울게 놓여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의자에 앉자 햇빛이 얼굴을 뒤덮었다. 고문받는 기분이었다. 시아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어른에게 나쁜 꼴 보이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가 조금 미워졌다.

교장 선생은 안경을 쓰며 시아를 한 차례 흘겨보았다. “학생, 이름이 뭔가요?” 쌓여 있는 서류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려놓았다.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시아는 자기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발음하였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두려움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어금니가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말해줄 수 있나요?” 시아는 입을 크게 벌려 입가를 억지로 풀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말하였다.

“시아 학생.” 교장 선생은 시아를 노려보았다. 악의(惡意)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시야가 어두웠던 탓이다. “이름이 참 멋지군요 누가 지어준 이름인가요?”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베이스(bass)처럼 시아는 목소리를 깔았다.

“그런가요? 훌륭하군요! 태몽도 훌륭하지 않았나요? 곰이나 사자와 같은 맹수가 나오는 꿈이었을 것 같은걸요! 그러니까 제 말은 잘은 몰라도 길들일 수 없는 동물이 나왔을 것 같은걸요?”

시아는 답하는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교장 선생은 깍지를 끼고 책상 위에 팔짱을 괴었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적이 언제인가요?” 시아는 좀 당황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어설픈 상담사가 쓰는 수법이라고 여겼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요. 개장을 부수었을 때인가요?”

교장 선생을 티 나지 않게 째려보았다. 시아는 처음으로 햇빛이 고마웠다. “고양이를 찾았을 때입니다.” 교장 선생은 계속 말하라고 했다. “시험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키우는 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이곳저곳 헤매다가 책상 서랍에서 찾았을 때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나 보군요?” 시아는 고갯짓으로 답하였다. “어떤 점이 좋나요?” 순간 교장 선생에게 조금, 아주 조금 친밀감을 느꼈다. 월요일 아침마다 조회대에 서서 호통만 치는 늙은이는 아니라고 여겼다. “자유로움이요. 고양이는 묶어 키울 수 없어요. 그런데도 어른들은 고양이를 묶어서 키우라고 하죠. 고양이가 다른 집 농작물을 망칠지도 모른다고요. 얼마나 어이가 없는 말인지…….”

시아는 곧 말을 끊었다. 얼굴이 화끈거렸으나 햇빛 탓이라 생각하며 입을 앙다물었다.

“꼭 학생 같군요!” 모니터를 보며 교장 선생이 말했다. “묶어서 키울 수 없는 존재라니, 학생은 자기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제가 보기엔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교장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창문이 온통 가려져 눈앞이 캄캄했다. 꼭 눈을 감은 것 같았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교장 선생이 종이를 한 장 건넸다.

“학생에겐 이게 최선이에요.” 자퇴 동의서였다. 시아의 부모님은 이미 서명하였다. “제 경험상 그렇습니다. 저도 학생 같았던 때가 있었거든요…….”

종이는 뜨거웠다. 교장 선생이 시아를 지나쳐 방의 저편으로 가자 햇빛이 다시 났다. 시아는 손그늘을 만들면서까지 동의서를 꼼꼼히 읽었다.

“학생은 영리하군요. 동의서를 그토록 꼼꼼히 읽는다니…….” 뒤에서 교장 선생이 말하였다. 소프라노처럼 가벼운 목소리였다. “음악 선생님이 가장 슬퍼했습니다. 학생이 자퇴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그러했죠. 그러나 나를 탓하거나 학부모회를 원망하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음악 선생님은 교양 있는 분이고, 무엇보다도 본인 또한 그것이 학생에게 최선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시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부모님보다 더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주었던 음악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교장 선생님.” 등받이에 어깨를 대고 최대한 고개를 뒤로 떨구었다. 우울한 기분을 걷어내고자 과장한 몸짓이었다.

교장 선생은 허공에 스윙하고 있었다. 시아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지 헛기침을 하였다.

“학생, 학교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 있나요?” 시아는 단호히 없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의 과거를 이야기해주지요…….” 교장 선생은 책상에 걸터앉았다. 햇빛이 절반 사라졌다. “나도 자퇴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등학교에서 쫓겨났던 기억이 있지요. 학생은 그게 믿기나요?”

시아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였다. 교장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당시 나는 학생보다 한 살이 많았으나, 학생보다 더 철없는 짓을 저질렀지요. 무슨 짓을 했는지 감도 잡을 수 없을 겁니다…….”

“야구공으로 유리창을 깨부수었나요?” 교장 선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학생은 나와 통하는 구석이 있나 보군요!”

교장 선생이 다시 자리에 앉자 햇빛이 나타났다. 이전보다 빛이 줄었다.

“그때 당시 나는 야구에 미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야구부가 없었죠. 그래서 저녁마다 혼자 운동장에서 야구공을 배트로 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겐 그게 더 없이 즐거운 일이었어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교장 선생이 손을 뻗어 자퇴 동의서를 가져갔다.

"배팅 연습을 끝내고 나면 야구공을 찾으려고 운동장을 헤맸지요. 그것이 나에겐 퍽 재밌는 일이었습니다만, 그날은 운동장에서 야구공을 하나도 찾지 못했어요. 어디 갔나 했더니 창문에 박혀 있더군요!”

시아는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었다.

“교장실에 두 개, 교무실에 네 개, 교실에는 뭐, 셀 수도 없었지요.” 교장 선생이 계속 이야기했다. “당연히 퇴학당할 줄 알았습니다. 만약에 퇴학을 당한다면 불명예스럽게 학업을 마친 것이 될 테고, 갱생할 가능성 없이 남은 평생을 살아가야 했겠지요.” 교장 선생이 시아와 눈을 맞추었다. “퇴학은 전과에 버금가는 일이니까.”

“어떻게 됐나요?”

교장 선생은 왼손을 활짝 펼쳐 보였다. “교장 선생이 날 구해주셨지요. 대신 야구공과 배트는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 그런다고 했어요……. 그땐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고 보니 그 뜻을 알겠더군요. 나에겐 야구공 살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을 해야만 했지요. 학생보다 한 살 많을 때부터 공장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장 선생은 안경을 쓰고 종이 위 글자를 훑었다. 방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학생, 굴지의 회사가 운영하는 공장이어도 불량품은 나오기 마련이에요. 아무리 뛰어난 설비를 갖춘 공장이어도 불량품은 나오죠.” 교장 선생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량품이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는 회사는 세상에 없어요. 누구도 그것을 보장할 순 없지요.” 교장 선생은 시아와 눈을 마주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학생이 행복하게 학교를 졸업한다고 보장할 순 없어요. 공장으로 치면 불량품이 나오기 마련이지요.”

시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른들이란 역시 어쩔 수 없는 존재들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불량품은 폐기 처분하면 됩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쓸모가 없으니 버리는 거지요. 하지만 나는 학생이 불량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생뿐만 아니라 길을 벗어난 학생들 모두, 불량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일정한 규격, 아니 사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맞지 않을 뿐이지요.”

시아는 고개를 떨구었다.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렇다고 모든 어른이 학생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진 마세요. 그건 착각입니다.”

“저도 압니다. 저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울컥하는 감정을 달래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교장 선생은 기다렸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저도 제가 옳지 못한 학생이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압니다. 저는 꽤 괜찮은 학생일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학생이 옳다고 믿지 마세요. 왜냐면 학생은 사회에서 배척받을 만한 행동을 했고, 그로 인해 비록 퇴학은 피했더라도 학교를 떠나게 되었으니까.”

시아는 고갯짓으로 답하였다. 교장 선생은 종이를 책상 구석으로 치웠다. 깍지를 끼고 팔꿈치를 책상에 괴었다. 그리고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올렸다.

“학생에게 조언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법을 어기지 말라. 조금은 엇나가도 괜찮아요. 그것이 길게 보면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답하지 않고 시아는 교장 선생의 손을 보았다. 두툼하고 상처가 많았으며 강인해 보였다.

“좋습니다. 그나저나 개장을 부순 이유가 뭔가요? 내 이야기를 들었으니 학생도 무언가 이야기를 해주어야겠습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시아는 잠시 침묵하였다. 교장 선생은 또 기다렸다. 상념에서 빠져나와 반짝이는 눈을 마주했을 때, 교장 선생이 참 어른스럽다고 느꼈다.

“두 번이나 그랬습니다. 이전에. 그때는 아주 어렸을 때였어요. 개장을 부수진 않았어요. 주인 몰래 개장을 열어 주었죠. 우리집 개장도 열었습니다. 우리집 개가 돌아올 줄 알았는데 다시 오지 않더라고요…….”

봇물 터진 듯 이야기가 쏟아졌다. 시아는 자신이 조금 신났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 다 잡혔습니다. 개장을 부수거나 그러진 않았고, 풀어준 남의 집 개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별다른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동기가 무엇인가요? 그러했던 이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개가 불쌍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우리집 개장을 열었을 때는 그렇게 답했어요. 바보처럼 울면서 그랬죠. 그런데 중학교 때는 다르게 말했습니다. 개가 나오고 싶어 해서 그랬다고 말했죠. 그러자 개장 주인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더라고요. ‘당연히 나오고 싶어할 거라고, 갇혀 사는 걸 좋아하는 동물이 어디 있느냐’고. 저는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왜 개를 가두어서 키우냐고, 개가 무슨 잘못을 지었길래…….’ 아저씨가 막 화를 냈습니다만, 안주인께서 잘 막아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사라진 개의 값을 치르고 나서야 저는 풀려났습니다. 그때부터는 제가 갇힌 꼴이 되었죠. 보이지 않는 개장에.”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교장 선생이 재촉하는 모습을 보고 시아는 내심 기뻤다.

“그 개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주인에게 돈을 돌려 달라고 따지러 갔죠. 그러나 주인은 술 마시는 데 다 써버렸다며 돌려주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성난 목소리로 주인에게 욕을 퍼부었죠. 저는 그 모든 과정을 뒤에서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왜 그랬다고 생각합니까?”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아니면 나를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학생은 둘 중 뭐가 더 답에 가깝다고 생각합니까?”

시아는 곧장 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꿈틀거렸다. 교장 선생은 기다릴 뿐이었다.

“후자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적어도 그때 당시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후 아버지는 주인에게 빼앗긴 돈을 빌미삼아 저를 마구 부려먹었습니다. 부려먹었다고 해도 집안일이나 농사일 돕는 게 전부였죠. 그마저도 투덜거리면서 했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혹여나 눈물이 나올까 두려워 시아는 눈을 감았다.

“저도 알아요.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저를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셨죠. 그러나 제가 못나게 태어나서, 아니 빌어먹을 개장 같은 시골에서, 권위주의로 칠해진 작은 사회에서 태어나서, 그것도 너무 올바르게 태어나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말하고 나자 가슴이 홀가분했다. 다행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삐뚫어진 세상에 올바르게 태어난 사람이라…….” 교장 선생이 중얼거렸다. “세상이 삐뚫어졌다고 해도 세상엔 법이 있어요.” 교장 선생은 ‘법’을 역겹다는 듯이 발음하였다. “삐뚫어진 세상에 올바른 법은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학생은 법을 지켜야 합니다. 제가 감히 학생 보고 무엇이 되라고 말하자면, 학생은 법학과에 가는 게 좋겠습니다. 법에 대해 알아야 법을 어기는 행위를 하지 않겠죠.”

교장 선생은 팔을 뻗어 동의서를 집었다. 전체를 눈으로 쓱 훑고 나서 서랍에 넣었다. 자물쇠가 걸려 있는지, 서랍이 닫히자 둔탁한 쇳소리가 났다.

“자, 가도 좋습니다. 학생의 인생을 살아요. 학생을 옭아매는 더러운 개장 하나가 사라졌군요. 그렇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러나 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기다란 다리만 덜덜 떨었다. 정강이가 책상과 부딪쳐 쿵 소리가 났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학생 인생에서 제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만…….”

시아는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저는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데, 그게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교장 선생은 대뜸 윙크하였다. 시아는 당황하여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어떤 경우에도 법을 어기지 마세요. 어떤 경우에도 윤리를 저버리지 마세요. 아무리 세상이 못났고 삐뚫어졌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규칙은 지키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시아는 고갯짓으로 답하였다. 그러자 교장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고 싶을 때 가세요.” 교장 선생은 또다시 스윙 연습을 시작하였다. “나는 이제 흔해빠진 늙은이 중 하나요, 당신의 교장 선생이 아니니까.”

해가 많이 기울었다. 햇빛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앓은 이가 빠진 듯 시아는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을 공처럼 쥐고 마음속에서 저글링 하듯 주고 받았다.

시아는 눈을 감았다. 감정이 야구공으로 변하자 창문이 부서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것을 말하고픈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곧바로 일어나 교장 선생에게 다가갔다.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스윙하고 있던 교장 선생이 시아를 올려다보았다.

“만약에 지금 창문을 뚫고 야구공이 들어온다면 교장 선생님은 어떻게 대응하실 겁니까?”

교장 선생이 호탕하게 웃자 시아도 그의 절반만큼 웃었다.

“나의 교장 선생님께서 거두어 갔던 공이 돌아왔다고 생각하겠지!”

시아는 허리 숙여 인사했다. 마음 같아서는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시원섭섭한 감정을 짊어지고 시아는 계단을 내려갔다. 늦가을 바람이 손에 닿자, 시아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무언가 손에 잡혔다. 막대 사탕이었다.

흡족하게 미소 짓고, 껍질을 벗겨 사탕을 입에 물었다. 달콤쌉사름한 복숭아 맛이었다.

시아는 자신을 맞이했던 전신 거울과 마주하였다. 막대 사탕의 기둥 부분이 담배처럼 보이게 머리 부분을 감추었다. 거울 속 모습을 보며 스스로가 조금 어른스럽다고 느꼈다. 그 모습에게 손을 흔들자 그도 시아를 향해 손을 가로흔들었다.

작별이다. 시아는 그대로 학교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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