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

무서운 사람

내 아내는 결혼하기 2년 전부터 일기를 썼다고 한다. 그냥 하나둘씩, 취미로 다이어리를 꾸미다 보니 용도에 따라 여러 다이어리가 생겼고 그중에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만 적는 다이어리도, 하루에 겪었던 일을 쭉 적는 다이어리도 있었고, 아직 내가 그 용도를 파악하지 못한 다이어리도 분명 더 있을 것이다. 이사하면서 본 다이어리의 개수가 내 예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우르르 쏟아져 나온 다이어리를 보며 나는 뿌듯했다. 적어도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내 와이프라니! 나는 군대에서 쓴 일기를 빼곤 딱히 일기를 써본 적이 없다. 집에서 안 보인다 싶으면 작은 방에서 조용히 작은 손으로 꼬물거리며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종종 사진을 찍었는데, 매번 왜 찍냐고 그랬다.

내가 주변에서 보지 못했던 이런 취미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좋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신혼여행으로 간 이탈리아에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폼페이에 갔을 적에 일이었다. 몇천 년 전 유적지에서 로마인들이 놀고먹고 동시에 생활하던 도시에서 그들의 낙서와 그림이 또 벽화가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심지어 화산재 속에 갇혔던 사람마저 석고로 본을 따 만들었다. 이렇게 폼페이를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 아내는 일기를 절대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남의 일기를 본다는 것이 올바른 일도 아니고 나도 굳이 보려 하지 않긴 했지만, 가끔은 특별한 날이 지나면 내용이 궁금해 물어보아도, 그냥 있었던 일을 썼어하고는 무언가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그렇다고 엄청난 호기심에 밤에 몰래 볼 것도 아니고, 나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박물관을 관람하는데, 폼페이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 올라왔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몇 세기 전 악보와 글이 전시되어 있을 때, 또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 아내의 일기에 어떻게 적혀 있을까?


만난 지 벌써 햇수로만 3년이 넘어가고 그동안 거의 붙어살다시피 했으니, 의도적으로 나를 배제하고 쓴 것이 아니라면 분명 일기에 나와 관련된 일이라던지 적혀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나를 주제로 통째로 쓰고 있는 미처 파악 못한 다이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불쾌함이나 그런 부정적인 것이 아닌, 나도 모르는 과거의 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내가 잘했는지 못 했는지 실수를 어떻게 했는지 아마 그 일기장에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일기장을 강제로 압수해서 펼쳐볼 일도 없지만, 반대로 확인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묘한 감정이 든다.


임금이 두려워한 것은 사서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내 아내의 일기에 어떻게 적혀 있을까. 그저 좋은 사람으로 적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로마에 가서 걸을 때의 생각이 또 났다.

어쩌면, 어디에든 적혀 종이 위에 또 다른 내가 있을 때, 그것이 지극한 사랑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언가 나와의 일들이 좋은 감정으로 즐거웠다는 말 한마디로 적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오래 보존되는 그녀의 감정으로 행복한 감정의 뿌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한 번 쭉 그 작은 방에 앉아 예전에 썼던 일기를 돌아보면 그때 아 그랬었지라고 하면서 나의 근심과는 달리 추억하며 행복에 젖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항상 나쁘고 슬픈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니깐 말이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의무감이 솟았다, 이왕 이렇게 하나씩 적히고 있다면 마구마구 잘해주어 오로지 기쁨만 적힐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그리고 또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 대해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일기를 꾸준히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해도 될 만큼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그렇게 하루를 갈무리하면서 쓰다니, 일기를 꾸준히 쓸 수 있다는 것도 재능이다. 고로 게으르기 때문에 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게으름이 부끄러워졌다.

어쩌면 그녀와 같이 보냈던 좋은 순간들이 이렇게 휘발되고야 마는 걸까. 어떻게 보면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가는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순간을 보내고 있다니! 후회가 든다.

이탈리아에 와서도 새로운 다이어리를 찾는 그녀의 뒤를 쫓아다니며, 나도 슬쩍 다이어리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녀는 돌아보며 일기 쓰려고라고 물었다.

나는 콧등을 슬쩍 긁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일기 쓰면 좋지라고 바구니에 내 다이어리도 담는다.


나는 그녀의 다른 한쪽 손을 잡고는 결제하러 갔다.

이제 부지런히 서로의 역사를 적어나가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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