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나는 아직 엄마를 엄마라 부른다
-야야 니 엄마는 곰 같데이 우째 저래 굼뜰꼬
굼뜨다는 말이 뭔지도 몰랐던 내게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어린 나는 할 말을 몰라 가만히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 뜻인지 알았어도 대답을 쉽게 할 일은 아니었다
나를 낳아주고 다섯 살 무렵까지 젖 물려 키운 건 엄마였고
네 살 터울의 남동생이 태어나고부터는 할머니 방으로 나는 옮겨졌다
-할매 옛날 이야기 하나 해줘
-야야 인자 할 야그가 다 떨어지고 없데이
-할매 했던 이야기 또 들어도 좋아
이후 할머니는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이야기 책을 빌려와 더듬더듬 읽어주시곤 했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 사랑 속에서 자랐다
-할매 등 좀 긁어도
-야는 밤마다 근지럽다카노
그러시면서도 까끌까끌한 손바닥은 벌써 등으로 배로 닿아 있었다
실제로 가렵지 않은데도 할머니 손길(어쩌면 엄마의 손길이 그리웠을수도)이 닿으면
어찌나 시원하고 아픈 배도 금방 낫는지...
모기나 벌레한테 물리면 할머니는 침을 발라 주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참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답으로 할머니 다리를 주물러드렸고 아픈 허리를 밟기도 했으며 할머니 손발톱 깎기는 내 담당이 되었다
겨울 밤이면 아버지 몰래 둘이서 민화투를 쳐서 진 사람이 마당에 묻어놓은 무를 꺼내와서 깎아 먹기도 했다
무엇이든 빨리 해야하는 할머니와 할머니 보시기에 느려터진 엄마 사이에서 내가 중심을 잘 잡았던 것인지
(아버지가 잘 하신 듯) 고부간의 큰 다툼은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였고 외동 아들인 아버지 사이에 3남 2녀를 낳아줬으니
속으로는 얼마나 이뻤을까
-너거 어마이 같은 사람 없데이
가끔은 나에게 그렇게 말씀해주신 거라 생각된다
가끔 고모들이
-너거 할매는 딸들은 안중에도 없어 오로지 아들 며느리 손주들 뿐
요즘 들어서 고모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올해 85세이신 어머니께서 2년 전부터 그린 그림이 윤별하 작가의 동시집 그림을 담당했다. 국민학교만 나왔는데 이렇게 그리실거라는 걸 아무도 짐작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계신다 .대단하신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