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지나고 백로가 목전
한낮의 햇살은 아직 따갑지만 조석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옷깃엔 가을 향기가 배어 있다
이 무렵엔 골목길 걷기가 참 좋다
특히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벽돌이나 돌틈 사이에 여러 풀들이 올라와 있는데 그중에 부추꽃이 가끔 피어있는 것도 보게 된다
물론 대충 지나치게 되면 눈에 띄지 않겠지만 골목길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느려지고 작은 사물 하나도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흰 부추꽃을 남방부전나비가 좋아하는 모양이라는 걸 요즘에 알게 되었다
골목길이라는 말에는 고향과 유년과 할머니와 어머니가 함께 있다
논밭일 바쁘게 마치고 부엌으로 들어간 엄마의 목소리
ㅡ밭에 가서 정구지 좀 비가 온나
허기를 달고다녔던 그 시절
제법 먼 밭을 재바르게 가서 낫으로 부추를 베고 호박과 호박잎과 가지까지 따서 돌아오면 저녁의 두레반이 비록 풀밭이었지만 풍요로웠다.
어쩌다 자반고등어 한 손을 숯불에 구우면 할머니와 아버지의 겸상에 한 마리 올리고 두레반 한가운데도 한 마리가 놓였다
오 남매의 젓가락과 눈치는 바쁘게 돌아갔지만 엄마의 젓가락은 고등어 대가리를 집는다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ㅡ댁바리가 더 맛있다
그러셔서 정말로 그런 줄 알았는데 대가리 보다 몸통이 더 맛있다는 걸 내 아이 키우면서 알아버렸다
어제 이른 저녁을 먹고 걸으러 나갔다가 매천역 앞 난전에 놓인 부추를 보고는 한 줌 샀다
요즘 부추가 꽃이 피는 시기라서 억세고 맛이 좀 덜하다는 걸 알았지만 어린 시절에 먹었던 쑹덩쑹덩 썬 부추에다 애호박을 채 썰어 넣고 약간 매운 고추를 쏭쏭 썰어 넣은 부추찌짐을 해먹을 생각을 하면 괜히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