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경
불쑥, 결항이 생겼어요
빠르게 제주행을 포기해 버렸죠
때로는 빠른 포기가 약이 되기도 하니까요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바꿨어요
김연지의 Whisky On The Rock이 나오네요
재즈향이 살짝 묻어 있는 멜로디를 휘감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
가을비 냄새가 나요
집시 여인의 몸짓이랄까
길 위에 서 있어야만 온전한 내가 되는 나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의 풍경들이 꽁꽁 언 채로 뒷걸음치며 달아나네요
들판이 텅 빈 이유와 발가락이 시린 이유는 비슷하겠죠
빈틈없이 살았다는 말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지만
버거운 삶 앞에 버려진 낭만들이 나의 시가 되기도 하죠
잠시 풍경에 골똘한 사이 장필순이 흐르네요
미풍 부는 날 논둑에 앉아서 듣는 풀피리 소리 같아요
차 유리에 올라앉은 햇살은 눈부시고 하늘은 너무 파래요
순간 불쑥 나타난 과속방지턱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박효신의 숨이 나의 숨을 진정시켜요
갈 길 바쁜 해가 눈발 사이로 눈 빤히 뜨고 돌아보네요
눈 때문에 상한 마음을 눈으로 위로받는 기분이 괜찮았어요
영원한 것은 없다는 그 말을 하려는데
와온 앞이네요
일몰마저 없는 날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