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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숙경 May 22. 2024

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

그래서, 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있습니다 


      -박숙경  



물고기가 자라납니다

팔거천은 어제보다 오늘 더 자랐습니다 


어린 새가 나뭇가지를 건너다니며 지저귈 때마다

꽃은 피고 세상은 더 환해집니다

한 뼘씩 그늘을 넓혀가는 칠엽수를 안은 햇살을 사랑합니다

건듯 건듯 어깨를 지나는 바람을 사랑합니다

오후 볕을 핥는 열여덟 살 고양이를 사랑합니다

사랑이 범람이면 팬데믹을 건널 수 있을까요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간절함처럼

별빛을 당겨오는 일도 오래도록 간절해서

늘, 우리를 꿈꿉니다 


기다림이란 말에 이미 익숙하지만

꽃 울고 새 피면 다시 주저앉고 싶어져서

더 그래서, 뜨거워지는 가슴으로

낯선 길엔 내가 있기도 가끔은 사라지기도 합니다 


돌담에 기대어 가물거리는 산 너울을 보면 눈물이 나서

이화우梨花雨 흩날리는 돌배나무 그늘이 하 좋아서

오늘도 어느 골목길 모퉁이에 나는 있습니다  

 

ㅡ시집『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달아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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