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가 있습니다
-박숙경
물고기가 자라납니다
팔거천은 어제보다 오늘 더 자랐습니다
어린 새가 나뭇가지를 건너다니며 지저귈 때마다
꽃은 피고 세상은 더 환해집니다
한 뼘씩 그늘을 넓혀가는 칠엽수를 안은 햇살을 사랑합니다
건듯 건듯 어깨를 지나는 바람을 사랑합니다
오후 볕을 핥는 열여덟 살 고양이를 사랑합니다
사랑이 범람이면 팬데믹을 건널 수 있을까요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간절함처럼
별빛을 당겨오는 일도 오래도록 간절해서
늘, 우리를 꿈꿉니다
기다림이란 말에 이미 익숙하지만
꽃 울고 새 피면 다시 주저앉고 싶어져서
더 그래서, 뜨거워지는 가슴으로
낯선 길엔 내가 있기도 가끔은 사라지기도 합니다
돌담에 기대어 가물거리는 산 너울을 보면 눈물이 나서
이화우梨花雨 흩날리는 돌배나무 그늘이 하 좋아서
오늘도 어느 골목길 모퉁이에 나는 있습니다
ㅡ시집『오래 문밖에 세워둔 낮달에게』(달아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