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향한 끝없는 도전_예술적 삶 1
재능의 발견과 훈련
2023년 12월 30일 오전 8시
호모 루덴스
인간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각하는 인간을 말한다. 호모 파베르는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을 뜻한다. 호모 에티쿠스는 윤리적 인간을 말한다. 그중에 호모 루덴스라는 말이 있다. 네덜란드의 인류학자 호이징어가 사용한 말로 ‘유희적 인간,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언제 가장 즐거울까? 대표적으로 꼽아보면 연인과 함께 있을 때, 친구들과 함께 보낼 때 즐거워한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함께 교류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인간은 혼자 있을 때도 즐거울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 때이다. 레고를 조립하고 식탁을 만들 때 인간은 즐거워한다. 이케야 가구점이 성공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하물며 자신의 집을 직접 설계하고 만든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손에 잡히는 유형의 물건 말고 상상으로 만들어 내는 무형의 것들도 있다. 그림, 이야기, 음악, 춤, 흔히 말하는 예술영역이다. 창조적 삶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분야이다.
인간은 원래 누구나 예술가였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물건들과 도구들을 직접 만들었다.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춤을 추기도 하고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며 벽에다 그림도 그렸다. 문명이 점점 발전하면서 직업의 분화가 일어나고 장인이 등장하고 예술도 분화되어 예술가라는 직업이 생겼다. 그 결과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가진 몇몇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함께 생겨났다. 창조라는 즐거움을 모두 누리던 시대를 지나 창조는 특정 분야의 몇몇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이라는 편견도 함께 생겼다. 인간의 즐거움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남겨진 빈 공간을 채운 것은 오락이었다. 감상하는 즐거움이다. 스포츠경기, 콘서트, 미술관 관람, 그리고 최근 압도적으로 각광받는 e-sport 등이다. 그러나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스스로 직접 체험하며 만들어내는 가운데 생겨난다. 재능이 있는 사람 만이 창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재능의 선천성과 뇌의 신경가소성
예술을 재능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측면의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한다.
첫째는 선천성의 문제이고 둘째는 뇌의 신경가소성이다. 선천성이라 함은 부모에게 물려받았다는 말인데 신체의 경우는 타당하다고 보는데 재능 영역은 불분명하다. 유전적으로 음악이나 공간감각, 언어 쪽을 담당하는 유전자 배열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피상적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다만 태아 때부터 많은 자극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그쪽 재능이 잘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선천성보다는 태어난 후 주변의 문화적 환경이 훨씬 더 영향을 많이 준다고 생각한다. 예체능의 경우 조기발굴과 교육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는 뇌의 신경가소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뇌의 신경가소성은 인간의 학습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뇌의 신경세포는 태어날 때 거의 비어있다. 여기에 갖가지 자극이 가해지면 시냅스와 뉴런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0세부터 10세까지 폭발적으로 형성된다. 특정 행동을 반복하면 신경세포의 두께가 전선의 피복처럼 두꺼워지면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반사신경을 만들어낸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천재이다 어떤 자극과 환경에 놓이는 가에 따라 한 인간의 일생이 달라진다.
여기에 추가되는 것이 관심과 흥미이다. 인간의 학습 동기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제 아무리 잘해도 재미없으면 소용없다. 그래서 적절한 자극과 동기가 매우 중요하다. 주변의 강요와 과다 학습은 독약이다. 자기 스스로 주도해야 한다.
뇌의 신경가소성이란 자극을 통해 새로 신경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말한다. 다만 연령에 따라 형성속도가 달라질 것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형성속도가 빠르고 나이가 들수록 느려진다. 중요한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중지능이론
1980년 하바드 대학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아이큐를 대신하는 새로운 지능의 표준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다중지능이다. 인간의 지능을 숫자로만 표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인간의 지능은 대략 8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현재 제시된 지능은 자기 성찰지능, 인간관계지능, 논리 수학 지능, 언어지능, 음악지능, 공간지능, 자연친화지능, 신체운동지능이다. 여기에 감정지능, 도덕지능 등 몇 가지가 더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숫자로 표현되는 지능의 폭력성은 소설 <바보 빅터>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고등학교 선생의 실수로 인생의 절반을 자기 아이큐가 80인 줄 알고 살았던 한 천재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 아이큐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쯤은 다 갖고 있을 것이다.
다중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더 폭넓게 바라본다. 인터넷상에서 유, 무료로 쉽게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재미 삼아 한 번씩 해보기를 바란다. 나의 경우 세 가지가 조금 부각된다. 자기 성찰지능, 언어지능, 음악지능이 다른 것들보다 조금 높게 나온다. 여기에 맞는 직업은 강사, 소설가, 작곡가, 목사 등등이다. 이 지능 중에 가장 중요한 지능이 자기 성찰 지능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세운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갈 수 있게 만드는 브레인 역할을 담당한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뛰어난 자기 성찰지능을 갖고 있다. 나는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책도 여러 분야 중에서 철학책을 가장 많이 사모았다. 지금도 일기를 쓴다. 나의 언어지능은 20년의 강사생활이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가장 간결하고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강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등학교 때의 내 꿈이 음악방송의 프로듀서였다. 나는 지금도 가요 차트의 음악 트렌드를 보고 분석한다. 그냥 재미있어서 한다. 기타를 칠 줄 알고 피아노와 드럼을 배울 예정이다. 자연스럽게 끌린다. 관심이라는 첫 번째 에너지를 갖춘 셈이다.
제2의 인생. 그리고 1만 시간의 법칙
나의 첫 번째 직업은 이제 막을 내렸다. 나의 두 번째 직업은 무엇이 될까? 위에서 언급한 후보군 중에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능이 그러하니 이와 관련된 일을 잘하고 재미있어할 확률이 높다. 관심과 재능과 적성, 이 삼박자는 서로를 추동한다. 관심이 재능을 만들고 적성이 관심을 이끌고 재능을 만든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난 재능도 없는데. 여러분들 중에는 자신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만난 학생들이 다 그랬다. 미래를 꿈꾸며 설계해야 하는 나이인데 자신에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잘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뒤늦게 어른이 되어 자신의 재능을 찾아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좀 지나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때 ‘1만 시간의 법칙’ 이 라는 말이 유행했다.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 서 소개한 이론이다. 간단하다. 뇌의 신경세포가 자신의 분야에 최적화된 신경회로를 만드는데 1만 시간 , 하루 세 시간 연습 기준으로 1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이다. 하루 6시간이면 5년으로 준다. 만약 일정표를 짜고 출근해서 일하듯이 하루 8시간 정도 단계별 목표를 잡고 도전한다면? 이는 의지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는 모차르트, 비틀스를 사례로 들었다. 신동 모차르트가 5살부터 작곡을 시작했지만 수준 높은 그의 대표작들은 대략 1만 시간의 훈련 이후 탄생했다. 무명밴드였던 비틀스도 독일과 영국의 바에서 연주하며 10년의 숙성기간을 거쳐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세상이 다원화되고 복잡해지고 변화도 빨라지면서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패턴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평균 5개에서 6개의 직업군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분석도 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기준은 적성과 흥미, 재능이다. 물론 직업선택의 기준에 이 세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도 무시할 수 없다. 보람이나 명예, 사회봉사 등등의 기준도 있다. 그런데 심한 경우 재능, 관심, 적성 불문 오로지 돈이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내가 또 물어본다. 얼마를 벌면 행복할까? 그런데 그건 또 잘 모른다. 막연히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아주 풍족하지는 않지만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돈이 최고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이 문제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렇게 말한 학생들도 이제 사회로 나가 몸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하나씩 배워 나갈 것이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익숙해지려면 배워야 한다. 기본기를 익혀야 한다. 소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예술 분야는 몸에 익혀야 한다. 소설은 써보니 머릿속으로 익혀야 한다. 원리는 똑같다. 내 신경 세포가 거기에 최적화되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신경세포의 형성속도가 느려지기에 그만큼 반복해서 그 느려진 속도를 만회해야 한다. 힘들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나는 지금도 비틀스의 Let it be 피아노 전주가 나오면 몸에서 엔도르핀이 나오고 아련해진다. 다른 그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부르고 싶은 충동, 이런 노래를 만들고 싶은 충동이 마구 솟구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창조의 삶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키보드를 바라보며 한 줄도 이어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방안을 서성거린다. 제발 제발 이러면서….. 여기서 도망가면 안 돼, 뒤로 물러서면 안돼를 되뇌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 물러섰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사투를 벌인다.
내가 선택한 일이다. 후회는 없다. 오히려 안 했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지난 두 달 반이 꿈만 같다. 절반의 성공이다. 삶이라는 물줄기의 방향을 틀어 놓았다 거기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허무라는 바다로 지금도 계속 흘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여행기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친구들과 후배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얼굴이 너무 좋아졌어요. 생기가 돌아요.” 이제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채우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 해결해야 될 많은 숙제들이 내 앞에 있다. 후회하지 않는 것, 그리고 용기를 가지는 것,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