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사의 반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부분 차용
어느 작은 마을의 중심가 큰 도로가 길게 나 있고 그 양옆으로 여러 가지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간혹 지나가는 행인이 있고 그중 한 구두가게, 창문에는 습기가 어려 뿌옇지만
유리의 한가운데로 가게 안이 보인다. 창쪽 진열대에는 튼튼하게 보이는 여러 모양과 색깔의 구두가 나란히 놓여 있다. 가게 안 한쪽 구석에는 구두가 거꾸로 작업대 위에 얹혀 있고 망치를 든 구두수선공이 열심히 구두를 만들고 있다. 그 옆에는 조수인듯한 청년이 부지런히 가죽을 자르고 있다.
조수: 스승님 오늘 아침부터 옆에서 지켜보니 정말 꼼꼼하게 만드시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리 정성스럽게 만들 수 있는지 존경스러 워요
장인: 구두 만드는 사람이 그럼 자기 구두를 대충 만들 수 있느냐? 뭘 당연할 걸 가지고 그걸 물어 보느냐?
조수: 아니 그래도 제가 여기 들어온 지 한 3개월째 아닙니까? 그동안 스승님한테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진짜 기억에 남는 거 하나 꼽으라고 하면 그 어떤 공정도 허투루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아 나도 저렇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볼까요?
장인: 그래 말해 보거라.
조수: 구두를 만들어 파는 게 직업이라면 구두를 만들어서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장인: 그래서?
조수: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정말 온 힘을 다해서 튼튼하게 만들면 한 번 구두를 사간 사람이 두 번 세 번 다시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오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럼 돈을 많이 벌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튼튼하게 만들어 주되 어느 정도 신고 다니면 좀 닳기도 하고 실도 끊어지고 그래야 또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올 거 아닙니까? 내 말인즉슨 튼튼하게 만들되 너무 튼튼하게는 안 만들어도 되지 않나 싶어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 라고요.
장인: (의자를 돌려 조수를 바라보며) 3개월간 나한테 배운 게 겨우 그거냐? 이 놈 봐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 어리석은 놈을 어찌할고! 너 내 질문에 대답을 한 번 해봐라
조수: (긴장하며) 네!
장인: 의사의 할 일이 무엇이냐?
조수: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거지요.
장인: 맞지?
조수:네
장인: 그럼 의사는 아픈 사람을 대충 치료해서 또 아파서 오게 만드냐 아니면 다 낫게 만드냐?
조수: 그야 다 낫게 만들지요
장인: 네가 환자라면 어떤 의사한테 가겠느냐? 아픈 사람을 다 낫게 하는 의사한테 가겠느냐? 아니면 며칠 지나면 또 아파서 병원 가게 만드는 의사한테 가겠냐?
조수: 당연히 확실하게 다 낫게 해주는 의사한테 가지요.
그럼: 그럼 구두는 어떠냐?
조수: (뭔가를 말하려다 이내 깨닫는다) 아! 그렇군요. 구두를 대충 만들면 그 가게에
다시는 안 가겠네요
장인: 세상에 구두가게가 여기 하나밖에 없다더냐? 금방 탄로 날 잔꽤를 부리다가는
바로 가게 문 닫는다. 세상 사람들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지는 않다.
오로지 가장 튼튼하고 좋은 구두룰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구두 만드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야. 명심하도록. 잔꽤는 절대 안 돼!
조수: 아이고! 스승님!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명심하겠습니다.
이때 문이 열리며 덩치가 아주 크고 화려온 옷을 입은 사람이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들어와 우렁찬 목소리로 말한다.
상인: 여기가 이 마을에서 구두를 제일 잘 만든다는 집이요?
장인: 유심히 상인의 얼굴을 살핀다. 순간 아주 어두운 표정이 장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무엇인가를 본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상인: 나같이 덩치 있는 사람이 3년을 신어도 끄떡없는 그런 신발 하나 부탁하겠소. 비용은
달라는 대로 주겠소. 이 구두가게가 소문이 자자하더구먼. 그래서 옆마을에서부터
이렇게 왔소. 내가 구두를 언제 신을 수 있겠소?
장인: 일단 치수부터 재야겠네요. 얘야!
조수: 의자와 발을 올리는 받침대를 들고 와서 상인 앞에 놓는다. 상인은 의자에 앉아서 스승을 보며 발을 받침대에 올린다
장인: 줄자를 들고 발의 폭과 발등의 높이를 정성껏 잰다. 그리고 손으로 상인의 발등을 감싸 안으며 발의 모양을 감각으로 확인한다. 항상 그랬다. 손으로 직접 발을 만져보는 데 서부터 장인의 구두 만들기는 시작되었다.
상인: 그래 언제 구두를 찾아갈 수 있겠소.
장인: 할 수만 있다면 일주일 뒤면 찾아갈 수 있어요.
제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속삭였다) 왜 저런 말을 하시지?
상인: 일주일 뒤라.. 알겠소 내 사람을 보내서 찾으러 오겠소. 내가 여기저기 장사하느라
많이 다녀서 발이 편하고 튼튼한 구두가 꼭 필요하오. 값은 후하게 쳐주겠어. 잘 부탁하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하인도 따라 나간다)
장인: 한참 동안 상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제자: (장인의 표정을 살피며) 스승님 어째 표정이 그리 좋지 않으신 거 같은데. 부자한테
주문도 받았겠다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장인: (말이 없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침묵이 흐른다. 한참 뒤 지시를 내린다.)
이 치수대로 가죽을 자르거라. 가죽은 가장 좋을 걸로 하고.
제자: 네. 알겠습니다.
이틀이 지났다. 오후 무렵 출입문이 열리고 이틀 전의 그 하인이 급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조수; 어! 이틀 전 그 상인… 아직 구두 다 완성되지 않았는데… 분명 일주일 뒤라고 했는데
하인: (슬픈 표정으로) 그게, 그러니까 이틀 전에 주문한 구두 그거를….
조수: 무슨 일이요? 좀 차분하게 말해봐요
하인: 주문한 구두 말고 다른 게 필요해서…….
조수: 다른 거라니? 뭐 어떤 거요?
하인: 사람이 관에 들어갈 때 신는 신발로 바꾸어야 하는데….
장인: 묵묵히 듣고만 있다.
조수: 그게 무슨 말이에요? 관이라니.. 누가 죽었어요?
하인: 주인나리가 그날 주문을 하고 집에 가셔서 저녁에 쓰러지셨어요
의사를 불러 치료했는데 의사 말이 일주일을 못 넘기실 거라고. 준비를 하라고 하셔서
조수: 아이고, 이 무슨 날벼락이…. 근데 가죽 벌써 다 잘랐는데…. 어쩌나?
장인: 무슨 말인지 알았소. 내가 직접 들고 갈 테니 돌아가서 기다리시게
하인: 네, 잘 알겠습니다.
하인이 돌아가자 조수는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아해한다.
조수: (스승의 얼굴을 가까이서 뚫어지게 쳐다보며) 어? 별로 놀라지도 않으시네. 거 참
직접 간다는 말은 또 뭡니까? 뭐 조문이라도 가시나요? 관에 들어갈 때 신는 신발은 가죽도
다르고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뭐 어쩌시려고? 아 모르겠다. 알아서 하시겠지
장인: 굽이랑, 끈도 마저 준비해 두게 원래 만들던 구두 색깔에 맞추어서.
조수: 엥! 원래 구두라고요? 하! 이건 또 무슨 말이래요?
장인: 군말 말고 시키는 대로 준비해 두거라.
하인은 계속 구시렁거리면서 지시에 따른다
그로부터 3일 후 구두가 완성되었다. 장인은 완성된 구두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외출할 준비를 한다. 조수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하고 정성스럽게 구두룰 포장해서 길을 나선다
상인의 집. 상인이 자기 방 침대에 누워있다. 구두를 주문하러 올 때의 그 당당함은 사라지고 초라하게 누워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장인은 신발을 상인의 머리 쪽 서랍장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장인: 안 보이는 걸 보니 잠깐 어디들 간 모양이네.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몇 마디 하겠소.
난 5일 전 당신이 우리 가게에 왔을 때 당신을 따라 들어온 죽음의 사신들을 보았소. 그들은
아주 냉혹하지요. 물론 하늘의 명을 받아 자신들의 일을 하는 것뿐이지요. 죽음의 그림자가
당신의 주변을 맴도는 걸 보면서 이 분도 곧 갈 때가 되었구나라고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당신은 3년을 신어도 끄떡없는 튼튼한 구두를 나에게 주문했소. 난 그때 알았지요. 아
인간에게는 자기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있는 능력은 주어지지 않았구나. 그럼에도 사람들은
본인이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구나. 그리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구나. 사람이 자기의 죽을
날을 알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가치 있게 살 텐데 하늘은 그 능력을 인간에게 주지는
않았구나.
그런데 내가 이 지상에 와서 깨달은 게 있어요. 인간에게 자기의 죽을 날을 아는 능력은 없지만
그 대신 선택이라는 능력이 있어요. 어려운 말로는 자유의지라고 고도하죠. 하늘이 인간에게
넌 몇 날 며칠 죽어야 해라고 강제로 정하지는 않아요. 본인이 뜻한 바를 이루려고 노력하면
때로는 생명을 연장시켜 주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런 말이 인간세상에는 있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당신의 삶이 아직 끝난 건 아니에요. 해야 할 일이 남아 앗고 남은 생을 값지게
멋지게 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하늘도 쉽게 데려가지는 못해요.
죽음의 사신들, 걔네 별거 아니에요. 걔들도 알아요. 살겠다는 사람 쉽게 못 데려 가요. 스스로
그만 살겠다고 한 사람들은 부담 없이 데려가지만. 그러니 상인 나으리, 한 번 버텨 보세요.
살겠다고. 할 일이 남았다고. 그래서 이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해주려고
왔어요. 제가 만든 구두 신고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야죠. 이제 당신이 살고 죽고는 당신의
의지에 달렸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곧 사신들이 올 겁니다. 그럼 이만!!
집을 나섰다. 그때 죽음의 사신들이 다시 상인의 집으로 날아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길을 걷는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는 왜 하라는 숙제는 하지 않고 쓸데없이 하늘이 준 인간의 운명에 개입하느냐? 나에게 반항하는 거냐?:
장인: 저는 인간의 운명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인간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려주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신 숙제는 잘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만 더 알면 숙제를 마칩니다.
“ 방금 어느 상인의 운명에 개입하지 않았느냐? 이미 사신들이 보고했다. 상인이 버티고 있다고”
장인: 그건 인간의 마땅한 권리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신 것은 당신입니다. 저는 당신이
인간에게 주신 인간의 권리에 대해 알려주었을 뿐입니다. 행복과 불행을 선택할 권리, 유혹을
거부할 권리, 인간에게는 선택의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마저 뺏으면 인간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잠시 침묵이 흐른다.
“네 말이 옳다. 나는 인간에게 선택의 권리를 주었다. 그리고 상인은 지금 그 권리를 누리고 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삶을 선택하려는 노력과 의지는 그의 몫이며 권리이다. 그가 생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사신들은 그를 데려올 수 있다. 사신들에게 지시해 놓겠다. 강제로 데려오지 말라고. 생의 의지가 다했을 때 그때 데려오라고”
장인: 위대하신 분이여 지당한 말씀입니다. 저도 저의 남은 숙제를 다하겠습니다.
“너의 노고가 헛되지 않기를”
서쪽 하늘에 어느덧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