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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슬로 라이프>를 시작하며

하나의 세계관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한 작고 단단한 저항

by 헤세

철학수업에서 시작된 질문


6~7년 전쯤이다. 그날 이후, 내 안에서 하나의 메시지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 메시지는 지금까지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학생들과 철학수업을 하면서 실존주의철학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였다. 내가 실존한다는 깨달음에 도달할 때를 <위대한 의식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돌이켜 보니, 그 때 작은 깨달음의 씨앗이 생겨난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곧 내가 배우는 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하나의 세계관에 지배된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암묵적으로 자연스럽게 나를 지배한다. 학생들의 경우 성적 지상주의에 압도적으로 지배당한다. 심지어 좋은 대학에 몇 명을 입학시켰는가로 고등학교의 순위를 매긴다. 어른들의 나쁜 행동이다. 모두가 좋은 점수를 받아 좋은 학교에 진학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것이 피라미드 구조라는 사실이다. 대다수는 정상에 갈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이 함께 존재한다. 정상을 향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꼭 정상이 아니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말해주는 환경이나 어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성공신화가 너무 강력하게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이 경우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좌절감이나 패배의식을 가지게 된다. 지방대에 간 학생들의 낮은 자존감이 이를 말해준다. ‘지잡대’라는 폭력적인 단어가 그 예이다. 피라미드의 정상에 올라갈 의욕을 상실한 구성원이 필연적으로 생겨난다. 그리고 아주 소중한 학창 시절 다양하게 자신의 꿈을 키우고 준비할 시기에 스스로를 비하하며 방황하게 된다. 남들이 가는 길(이 경우 성적을 위해 공부하는 것)을 가지 않은 것이 비정상이며 패배자의 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려면 다양한 가치관을 제시하고 경험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 나도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고 살아남았지만 언제나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왜 행복의 기준이 하나여만 하는가?



비교를 통한 가난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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