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K-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본 K-팝의 정체성

Hesse의 예술 기행

by 헤세

“케이팝은 더 이상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이야기 방식이다”



들어가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이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놀라운 현상이다. 아시아 작은 나라의 춤과 음악이 전 세계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노래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패션, 음식, 뷰티 등으로 확산되며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한류는 얼마가지 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많은 평론가들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전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과연 케이팝의 본질, 정체성은 무엇인지 간략하게 짚어 본다



디오니소스적 에너지, 도취



니체는 그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밝힌 바 있다. 디오니소스적 에너지와 아폴론적 에너지의 절묘한 결합이 그리스 비극의 본질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디오니소스적 에너지가 바로 도취이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원초적 에너지, 광기, 생명의 힘을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에너지라고 정의했다. 니체는 그 대표적 사례로 음악을 들었다. 케이팝은 도취이며 생명의 에너지이다. 노래와 춤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에게 가 닿는다. 텍스트는 번역의 과정을 거친다. 이성이 필터로 작용한다. 본래의 의미가 왜곡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과 춤은 만국공통어이다. 가장 본능적인 인간의 정서를 건드린다. 춤과 어울리는 강력한 비트로 대중을 열광시킨다. 그것은 도취이다.



장르의 혼종, 크로스오버



케이팝은 음악적으로는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다. 온갖 장르의 융합이다. 필요하면 모든 장르를 차용한다. 한 명의 작곡가가 만들어내는 예술적 완성도를 지향하지 않는다. 집단창작을 통해 대중들이 환호할만한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거기에다 춤을 결합시킨다. 가장 대중적이며 상업적인 창작이다. 이래도 좋아하지 않을래? 라며 대중을 유혹한다. 벌스 코러스 후렴 등 음악의 파트를 잘게 나누어서 가장 예리하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멜로디를 만들어 낸다. 후크라고 불리는 파트를 만들어 반복적으로 따라 부르게 만든다. 그래서 케이팝은 원초적이며 도취의 음악이다. 압도적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케이팝의 역사


이러한 케이팝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다. 랩과 댄스의 등장은 발라드와 트롯 중심의 대중가요에 큰 변곡점을 만든다. 이후 SM의 아이돌그룹 HOT가 등장하면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아이돌그룹 육성이 본격화된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연습생을 훈련시켜 정식 데뷔하는 육성시스템이 정착된다. 2000년대 들어와 YG, JYP 등이 가세하면서 트로이카 체제를 만들고 본격적인 경쟁에 들어간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대중들의 혹독한 검증을 거치는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JYP는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원더걸스를 미국시장에 야심 차게 선보이면서 초창기 이른바 맨땅에 헤딩을 시도한다. 버스를 타고 미국전역을 돌며 유명가수들의 콘서트에서 자신들을 소개하는 아주 전통적인 방식의 활동을 했다. 이 시도는 비록 실패했지만 나중에 BTS가 이들의 실패를 교훈 삼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해외진출을 시도하는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핵심만 말하자면 지금의 K-POP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30년이 넘게 지속적으로 자본을 투자하며 쌓아온 시스템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시장 안에서 치열하게 대중들에게 검증받으며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과정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쉽게 무너질 수 없는 탄탄한 내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류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전문가의 예상은 마이너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지구적 유통구조: 유튜브, 넷플릭스



문화세계화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유튜브의 등장이다. 2005년 구글에 넘어간 유튜브는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새로운 대중문화의 유통시스템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지구촌을 강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유튜브 때문이었다. 워너, 소니, 유니버셜이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는 유통시스템에서 변방의 뮤지션들이 실력을 검증받기 전에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미국시장에 진출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유튜브는 이를 가능케 했다. BTS는 JYP의 실패를 교훈 삼아 유튜브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넓히기 시작했다. 10대들은 이미 영상에 익숙해진 세대이며 어린 시절부터 케이팝을 보고 들으며 성장했다. K-팝은 보고 듣는 노래이다. 유튜브를 통해 광범위한 팬덤이 형성되었다. 이들이 20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 소비층의 주류가 되었다. 팝과 락을 소비하던 40대 이상은 이 현상이 쉽게 이해가 안 된다. 음악시장의 소비층이 서서히 바뀌면서 케이팝의 존재감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BTS가 그 문을 열었고 블랙핑크가 확실하게 케이팝의 존재를 과시했다. 그리고 <케데몬>에서 절정을 알린다. 특히 <케데몬>은 가상의 아이돌이라는 점에서 이후 벌어질 여러 변화의 가능성을 알리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음악이 영상과 결합되자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한다. 가상의 아이돌이 부른 노래가 빌보드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파급력을 보여준다. 이미 지구는 하나의 단일한 공동체가 되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그 과정에 많은 역할을 했다.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적어도 온라인에서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



케이팝의 미래: IP 세계관의 등장, 선한 영향력


더 이상 음악은 단순히 음악에만 그치지 않는다. BTS는 자라는 10대들에게 자아정체성을 심어주었고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주었다. SM이 육성한 애스파는 <광야>라는 콘셉트로 하나의 가상세계를 구현하고 자신의 팬들이 세계관을 공유하고 함께 가상세계 안에서 즐기며 소비하기를 원했다.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음악은 더 이상 단순한 예술이 아니며 세계관을 공유하며 뮤지션과 팬들이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가상세계의 관문(포털)이 되었다. 새로운 플랫폼의 창조와 공유가 21세기 미래형 기업들의 공통된 목표이다. 인공지능도 로봇도 모두 이 플랫폼의 일환이 되는 것이다. 플랫폼을 장악하는 자가 모든 걸 다 가진다. 문화예술 산업에서도 이런 거대한 흐름에 맞추어 가상세계를 구현하고 팬들과 함께 플랫폼을 만들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구체화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유희적 인간의 자연스러운 즐거움 추구를 벗어나면 안 될 것이다. 뉴진스의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인정받았던 것도 대중의 보편적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일상을 벗어난 과도한 마케팅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선한 영향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구촌 세계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감성을 유지하는 것이 케이팝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혹여 도취와 열광에 심취해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한다. 단 하나의 기준. 음악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헤세의 슬로 라이프>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