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묘비명

by 임경환

“널묵재 밭을 일구어 오남매를 키우고

다시 밭으로 돌아오다.”

부모님 묘비명이다.

맏아들의 권한으로 내가 그렇게 정했다.


말 그대로 그분들이 살아온 궤적이다.

우리 고향 뒷산 거친 비탈을 올라가면

거짓말처럼 비옥한 황토로 된 평원이 있다.

거기가 널묵재다.

거기로 하루에도 몇 번씩 지게 짐을 나르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대학까지 시켰다.


어머님이 두 해전에 가셨고 며칠 전에 아버지가 가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유머를 구사하셨다.

설날 다음 날 돌아가셨는데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께 그날 난 면회하러 가서

좋아하시는 홍시랑 믹스커피를 드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떠나시기 한 시간 전에

아버지는 내 여동생이랑 전화를 하셨다.

평상시라면 늘 하시던 대로

“그래, 고맙다. 건강하고 가족들 잘 다스리라.”라는 말로 전화를 끊는다.

얕은 치매가 있으시면서도 자식들 누구에게나 같은 말로 전화를 끝내신다.


그날은 달랐다.

여동생의 말이 아니라 폰에 저장된 아버지 목소리가 그렇게 증거를 남겼다.

“저기 사람들이 기다린다. 가봐야 한다.”

여동생은 생전 아버지가 하지 않는 이상한 말씀이지만

요양원 식구들이 저녁 식사를 단체로 가나 보다 하고

“그럼 얼른 가세요, 며칠 뒤에 뵈러 갈게요.”라고 했다.

아버지가 같잖다는 듯이 말씀하시기를

“야 이놈아, 간다는데 뭘 온다하노? 간다니까, 오지 마라.”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가셨다.

95세의 아버지가 아주 쉽게 그렇게 가셨다.


어릴 때 초등학교 일이 학년 짜리를 못자리하는 무논에 데리고 갔다.

2월의 끝자락에 무논은 맨발의 아이에게 정말 차가웠다.

차가운 바람에 콧물까지 나는 날

송아지가 커서 어른이 된 소가 쟁기 일이 힘들고 서툴러서 마구 날뛰니까

어린 아들이 앞에서 고삐를 잡고 아버지가 뒤에서 쟁기를 잡았다.

소가 날뛰면서 고삐를 놓치거나 소가 머리로 아이를 쓰러뜨리면

‘저 맨재기 같은 놈’이라고 내게 화를 내시던 그분이다.


그래도 자식들을 아끼고, 삶 자체가 자식들 뒷바라지였던 아버지는

농부로서 선비로서 자식들의 스승으로

아름답게 사시다가 아름답게 가셨다.

널묵재 밭을 일구어 오남매를 키우고

그 오남매들이 사회에 나가 제 역할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까지 결혼하고 있으니

사람으로 가장 큰 행복을 누리고 가신다.


이제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행여 벼 이삭을 흘린다 해도 나를 혼낼 수 없으며

차가운 무논에서 내게 맨재기 같은 놈이라고 혼을 낼 수 없다.

그저 아들이 해준 비석 뒤에서 묵묵히 계셔야 한다.

‘어디 한 번 일어나서 맨재기 같은 놈이라고 해보셔

이젠 가만 안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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