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이다. 봄날 같다.
길을 걷다가 혹시나 해서 길옆을 자세히 봤다.
말라빠진 잡초 덤불 곁에 초록 잎이 있고
그 위에 보라색 봄까치꽃이 피었다.
내가 아는 한 봄에 가장 일찍 피는 꽃이 봄까치꽃이다.
여리고 앙증맞은 새끼손톱의 1/4도 안 되는 크기의 보라색 꽃,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꽃이다.
그 추위 속에서도, 쌀쌀한 바람 속에서
강인한 생명을 뿜어낸다.
존경심이 우러난다.
옆을 봤다.
혹시나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냉이가 있나 싶어서?
있다.
그런데 그 작은 냉이가 봄까치꽃보다
더 작은 좁쌀만 한 꽃을 피우고 있다.
이건 반칙이다. 이래서는 안 되지?
아직 올해 냉잇국 맛도 못 봤는데?
어릴 때 이런 노래를 불렀다.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달이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동요에서처럼 봄에 냉이를 캤던 거 같다.
그런데 말이다.
꽃이 피면 냉이를 먹지 못한다.
꽃대가 올라오면서
뿌리가 딱딱해지는, 즉 목질화가 되어 맛이 없어진다.
냉이는 꽃이 피기 전에 뿌리가 말랑말랑할 때
가장 향기가 나고 가장 식감이 좋다.
그런데 봄이 이제 막 시작하기도 전에 꽃이 핀다고?
내가 초등학생일 때 보던 냉이와 60대가 되어 보는 냉이는 다르다.
분명히 달라졌어.
그땐 봄에 냉이를 캐러 빈 밭에 나갔다고,
그리고 분명히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작년 묵은 잎 안에 새싹이 돋고 있는 냉이를 캤어.
확실하다고
그런데 이럴 수가 있어?
야가 왜 이러는 거야?
이제 막 애기 같은 냉이가 왜 꽃을 피우냐고?
애기가 애기를 낳는 거 같은 말도 안 되는 짓을!
맛있는 냉이를 누구나 찾거든.
그래서 봄에 아무나, 누구나 와서 냉이를 캐서
냉이씨가 말라버리는 거야.
그래서 냉이가 꾀를 낸 거지.
이러다 우리 후손들이 다 죽게 생겼다.
힘들더라도 겨울만 지나면 꽃을 피워버리자고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먹지 못하도록
정말이지 난 그렇게 믿는다.
내가 어릴 때 보던 냉이와 지금 냉이가 다르다고
그 수십 년 사이에 진화한 거라고
수백 년, 수만 년에 걸친 진화가 아니라
수십 년 안에 진화가 일어난 거라고….
만약에 냉이가 파릇하게 맛있게 한 달만 유지된다면
나 같은 사람이 모조리 뽑아먹겠지.
지금 들판에서 냉이를 캘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일주일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적용해 보자.
여러 종류의 냉이가 있었어.
그중에서 봄에 유독 꽃을 늦게 피우며 맛을 자랑하는 냉이는
사람 손에 뽑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꽃을 일찍 피워 사람의 손길을 피한 냉이가 선택되어
지금 냉이의 조상이 되었다.
내가 농담처럼 지어냈지만, 사실일 거 같기도 하다.
지금의 봄엔 옛 동요에서처럼 종다리가 높이 떠 있을 땐
냉이가 이미 씨를 여물리고 있다.
봄나물이라고? 택도 없는 소리다.
아주 이른 봄을 품은 겨울 끝의 나물이다.
그래서 올해도 자연산 냉잇국은 못 먹게 생겼다.
꼭 먹고 싶다면 봄이 늦게 오는 강원도 산골로 가서
냉이를 캐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