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게 살기

by 임경환

난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다.

천성대로 살기도 했지만

관심이 있는 일이면 집중해서

또 불꽃 같은 에너지를 태우면서 살았다.

젊을 때 일기장엔 분명 이렇게 썼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온몸의 에너지를 짜내어 나를 불살라

미련이 남지 않도록 살리라.’


퇴직을 하고 시간이 많다.

온몸의 에너지를 짜내어서 하고 싶은 일이 없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있다.

가장 하고픈 일이 한껏 게으르게 살기이다.

아주 열심히 빈둥거리고, 열심히 배회하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온갖 변덕을 부려가며

내 마음대로 해 보기다.

자발적이 아닌 어떤 일도 싫다.

이젠 말이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느껴보면서 살 거야.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면서

어떤 새들이 지저귀는지?

어떤 아기가 이쁜지?

새싹은 어떻게 나는지?

꽃봉오리는 어떻게 부풀어 오르는지?

들여다보고 느끼고 감탄하고 공감하면서 한껏 게으르게 살고 싶다.

누구에게서도 방해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고 싶다.

그 말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다는 말이다.


부모님도 떠나셨고 아내도 이쯤에선 나를 놓아준다.

내가 게으르게 산다고 뭐라 할 아무도 없다.

내 천성대로 살 수 있게 되었어.

웃음이 난다.

장기적 계획 같은 건 없다.

하루하루 살아가자고, 닥치는 대로

아무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가는데도

내일이 기대돼서 두근거린다는 게 신기하다.

신기한 하루가 또 기다린다.

미래가 예측이 안 되고 가늠이 안 돼서 더 궁금하고 더 흥미로운 하루

천천히 눈을 떠보자고, 천천히 나서자고

지금 보니 살아온 시간이 늘 새로웠는데

게으르게 살지 못해서 그걸 느끼지 못했었군!

이젠 모든 게 새롭다. 모든 걸 느끼면서 살자.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어.

‘세상에 감사하며 나는 행운아다.’

진정 내게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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