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
2020년 2월,
봄이 시작되기 직전의 혹독한 겨울이다.
전 세계적으로 질병이 퍼지기 시작했고,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내 마음 또한 요동친다. 깊이도 모르는 호수처럼 조용히 일렁이고만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내 자유의지대로 움직이는 세상이었다면 호수처럼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많은 부분을 감내하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건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만사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했지만, 이런 건 학교에서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미움은 에너지가 커서 상대방에게 쉽게 도달하고 만다는 걸 머리로는 너무 잘 안다. 그러나 그 미움 에너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시기하고 증오하고 오해하고 자신만의 틀 안에 가둬 상대방을 학대하는 짓을 멈추지 않는다. 그걸 바로 그 사람이 뭘 해도 미운 현상이라고 부른다. 말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답을 갈구한다. 결국 상처받는 건 자신뿐인데 말이다. 결국 시간이 조금 필요한 순간이 온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며 스스로 옳은 답만을 내놓는 ai가 아니기 때문이다. ai도 실수를 한다. 사람이 만들었으니까.
더 나아가 내가 가지는 감정에 있어 답은 없다. 내가 싫으면 싫은 거고 좋으면 좋은 거다. 구태여 내 감정을 타인에게 확인을 받으려던 지난날들이 무색해진다. 내가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 건지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착한 사람이고 싶었는지, 혹은 무리에서 빠져나오는 게 무서웠는지, 혹은 미움받는 게 두려웠는지 그 이유는 다양할 것이지만 내 감정에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다. 이젠 그런 상황 속에서 왜 그렇게 말하는지 덧붙여 묻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좋냐고 물어보는 게 나을 것이다. 내가 싫다 하면 그만이니까. 당연 상대방 또한 자신이 하는 행위 자체의 자유의지를 억압당하면 분명 기분이 나쁠 테니까 그냥 그럴 땐 공기의 흐름을 읽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이래서 눈치 없는 사람은 눈치 없는 대로 어색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은 그건 그거대로 고통받겠거니 싶다.
항상 생각하지만 적당한 건 언제나 힘들다. 적당한 삶이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기준을 정할 수 있는 건지조차 모르겠다. 번뇌와 상념이 깊어지는 혹독한 계절이 끝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