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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순수 악의 존재라고들 한다. 편을 가르자면 순수 쪽에 무게를 싣는 나조차도 요즘 아이들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아 있었다. 교권 추락과 체벌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서일까. 와르르 몰려다니며 험한 말을 일삼는 아이들이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사실 내가 초등학생 시절엔 체벌은 당연시되는 세상이었다. 지나가는 모르는 아저씨에게 혼이 나는 게 어색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심지어 체벌을 행하는 도구에 ‘사랑의 매’라는 명칭까지 붙여가며 정당화하던 시기 아닌가? 매가 매지 어찌 사랑이라는 단어와 어울렸을까 싶다. 일례로 초등학생 시절 이야기를 해보자면 한 아이가 숙제를 해오지 않았을 때 반 전체가 손바닥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맞을 차례만 기다리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하지도 않은 잘못에 같이 체벌받아 억울한 것도 있었지만, 그땐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시대에 자라와서 그런지, 어린아이가 혹은 학생이 잘못을 하면 무조건 엄격한 체벌에 행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 생각이 어느 정도 허물어진 건 미술 학원에서 강사의 일을 경험했을 때였다. 그때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꼈던 아이들은 정말 어른들을 보고 자라났다. 아니 먹고 자란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들에게 어른이란 자양분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좋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일단 흡수해 버리고 흉내 내는 것에 탁월했다. 요즘은 어른들이 바빠져 유튜브 같은 매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이유도 뜻도 모르는 언어들을 사용했다. 솔직히 처음엔 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땐 이 친구들에게 화를 낼까 혼을 크게 내볼까 아니면 재치 있게 받아쳐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일개 학원 강사가 뭐라고 아이들 훈육까지 할까 싶어 그냥 내버려 뒀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사실 이대로 내버려 두기엔 아까운 순수한 영혼들이었기에 말이다.
“만약 ㅇㅇ이한테 ‘야 어쩔티비 그림도 안 그리는 저쩔냉장고 크크루삥뽕’ 하면 기분이 어때? 네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아. 그러니까 그런 말은 선생님이 이 학원에 있는 한 쓰지 말자. 너네가 쓰면 선생님도 쓸 거다.”
나 스스로도 이 말을 건네며 언어 정화가 필요했다. 모범을 보여야 했기에 긍정적인 표현에 집중했다. 노력이 보였던 탓일까 아이들은 그 이후로 점차 그런 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표현 방법을 몰라서가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너무 오지랖일 수도 있다. 내 성향이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편이라 그랬던 건지 꼰대라서 그랬던 건지 혹은 단순히 저런 단어가 듣기 싫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교육 지도에 정답은 없겠지만, 난 아이들에게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가르쳐 줄 의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이 어른이 된 나의 숙제이자 과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어린 시절 그런 사람이 부재해서 더 간절한 마음에 이런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결론은 내가 본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연하고 순하다. 말랑말랑한 그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올바른 표현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던 강사 시절이 떠올라 글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