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16
오늘은 닿지 않는 전화를 걸어본다.
"나 말이야 오늘 혼자 분에 못 이겨 씩씩대며 집에 와 혼자 물 마시다 울었지 뭐, 그렇게 울다 지쳐 잠드는 게 가끔은 해방감을 주거든 집에 와선 상사 욕을 그렇게 했어. 오늘은 그럴만했거든
내가 대상자 상담 일지 보고에
‘독거 생활로 인한 우울감을 호소하나, OO역 인근으로 사교댄스를 다니며 정서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함. 재혼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혼자 생활 중인 상태로, 정서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정기적인 안부 확인이 필요한 상황임.’
이라고 적었어.
난데없이 그 어르신의 사교댄스를 다니는 목적이 뭐냬 아니 뭐겠어 이를테면 취미생활 아니겠어?
근데 혹시 ‘제비’냐는 거야.
에이... 설마 회의에서 그런 단어를 쓰겠어? 일단은 못 알아들은척 했어. 어벙한 게 가끔은 사회에서도 요긴하게 쓰이니까. 근데 기어코 내가 이해 못 한 것 같은 부분을 이해시켜 주려는 건지
“그러니까 여자 꼬시려고 사교댄스를 다니는지 궁금하다."라는 거야.
그래서 “그런 정보도 제가 어르신께 직접 물어봐야 되는 부분일까요?”라고 되물었어.
응, 나 정말 그 순간 이성이 끈이 끊겼지. 정말이야. 더 이상은 내가 한낱의 실 같은 이성을 붙잡고 그 사람을 대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어. 듣고 있자니 화병이 나서 죽겠더라고. 그냥 그 사람을 상사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게 싫어서 집에 와서 냉장고에 대고 소리 질렀지.
‘왜 내 대상자한테 지가 뭔데 제비녜 마네 하는 거야? 뭘 안다고 그리고 제비면 어쩔 건데. 여자 만나려고 사교댄스 다니는 거면 어쩔 건데.’라고
오늘은 그렇게 또 헛소리 가득한 회의를 세 시간이나 했어. 재미는 제3자한테나 재밌는 거고, 나 이젠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는걸. 나라는 인간 하나를 갈아 넣어 200명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싶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여기까지 왔을까 싶어서. 내 죄라도 알면 좀 되돌릴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 “
누군가에겐 닿았을 거라 생각하며
눈물자국 슥슥 닦아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추신 : 마음이 오만가지 갈래로 찢기는 듯한 고통으로 끊임없이 슬퍼질 수 있음에 애도를 표한다. 이를테면 내가 당신을 걱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당신을 걱정하기 시작하면, 나는 누가 걱정해 줄까 싶어 이내 마음을 접어보곤 하는 것이 스스로가 꽤나 고깝게 느껴지곤 했다. 그러니까 나는 어쩌면 위선과 기만의 갈래에서 정해진 대답만을 원하는 미성숙한 인간의 표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