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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

by 뉴요기


지금 나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올해 96세이신 외 할머니. 무릎이 안 좋으셔서 거동이 힘드시지만 그래도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편이다. 정신도 또렷하셔서 아직도 기아타이거즈 야구경기를 챙겨보시고 결과 같이 이야기하고 손자손녀 그리고 증손자손녀에게 용돈까지 챙겨주시는 멋진 할머니이시다. 아직도 할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 받은 상처가 있어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다. 읽으시면서 오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두가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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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할머니한테 이렇게 편지 쓰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

이 편지를 할머니에게 보내드리지 않을 거야. 지금 96세이신 할머니에게 나의 어릴 적 감정을 보여드릴 필요는 없다고 나도 생각하지만 방금 chatgpt도 부치지 않을 편지를 써 보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아이디어를 얻어 또 힘을 빌려 이렇게 써 내려가.


나는 어렸을 때 엄마한테서는 사랑을 많이 느꼈어. 엄마의 잔소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칭찬도 해 주시며 잔소리도 하셨거든. 그런데 할머니는 내가 몽둥이나 매로 맞은 기억은 없지만 할머니의 손으로 많이 맞은 기억이 나. 나는 사 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나 언니한테 양보해야 하고, 작고 여린 1살 차이 나는 동생한테 양보해야 하고, 남자동생이니 양보해야 하고 나는 양보만 하는 사람이었어.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장농문를 확 제쳐 차곡차곡 쌓여있는 이불에 입을 대고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몰라. 엄마는 항상 할머니에게 잔소리 못 하셨지만 할머니는 항상 잔소리하셨지. 엄마랑 같이 있을 때, 입모양으로만 또는 행동으로만으로도 나를 윽박지르곤 했어. 어린 나이에 내 여동생이랑 한 대화가 기억이 나.

“효진아 할머니는 나만 미워하는 것 같지 않아?”

“응 그런 거 같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동생한테서 위로받았어.

같은 행동을 해도 나만 혼나니 나는 너무 상처받았고 할머니가 미웠어.


5학년이 된 해 아빠는 집을 새로 지어 647번지 넓은 집으로 이사한 거 기억나지? 언니랑 같이 쓰다가 언니가 고등학생이 되고 나는 중학생이 되어 언니는 독방을 갖고 나의 룸메이트는 할머니가 되었어. 나는 너무 싫었어. 그래서 창고로 쓰는 작은 방으로 혼자 가서 잤어. 나중에는 할머니가 가셔서 주무셨지. 이런 날이 얼마나 지속됐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아래층 사람들이 이사 나가고 할머니와 언니가 내려가서 각자 방을 갖게 되었어.


그리고 내가 할머니 욕한 일기를 엄마가 보기도 했어. 주체를 안 써 놔서 엄마는 엄마한테 한 말이냐고 조심스레 물었었어. 그때 솔직하게 털어놨어. 할머니였다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더라고.


그래 맞아!

안 좋았던 기억만 있는 건 아니야.

내가 피아노를 치면 그렇게 손뼉 치며 좋아하셨어.

(잠자고 있는 피아노를 깨워서 좋아하신 것도 있었어)

할머니한테 칭찬받으려고 피아노를 그렇게 열심히 쳤나? 싶기도 해. 그래서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피아노를 치고 있네.


나는 너무 외로웠고 불쌍했어.

나의 어린 시절 편애와 잔소리로 가득 찼던 할머니와의 기억을 던져버리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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