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각장애아들을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두 가지는 바로 '점자'와 '보행'이다. 이 두 가지가 내 아들의 미래 자립생활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요성을 매우 잘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쉽게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 두 가지와 가장 힘겹게 지내고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 초등학교 1학년 시기이다.
'점자'이야기를 하려면 시리즈로 써 내려가도 부족할 것 같고, 오늘의 이야기와 조금 초점이 벗어나기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시각장애아의 '보행'에 대해 써 내려가려고 한다.
내가 처음 소망이에게 흰 지팡이를 사준 것은 아들이 서너 살 정도 되어 손을 잡지 않고도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부터 오육 년 정도 전의 일이지만, 그때는 시각장애아이들의 보행을 다루는 기관도, 관심을 갖는 부모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저 시각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빨리 배우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나는 여기저기 보행을 알려줄 전문가를 찾았다. 외국 사례에서는 걸음마 단계부터 시작한다는 보행교육을, 한국 엄마인 나는 왜 이리 극성맞게 벌써부터 그 조그만 아이에게 케인을 들리려냐, "왜?"에 대한 질문을 주로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내 아들이 성인이 되어 케인을 그냥 그의 삶의 일부로 여기고 그것을 자유롭게 다루면서 불편함이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곳에 케인을 의지하면서 독립적으로, 간혹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겠지만, 다닐 날을 꿈꿔보았기 때문에 그 이유로 나는 그렇게도 묻고 또 묻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케인을 들고 한국에서 길거리로 나가는 것조차 나에게는 참 힘들었다. 나도 시각장애아이를 키우는 서너 살의 엄마로, 나도 이 아이의 장애를 당당하게 말하고, 주눅 들지 않고 다니기엔 아직 어린 엄마였던 게 사실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도 했고, 자꾸만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는 내 모습이 아들 소망이에게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혼자 다니지도 못하면서 왜 나오려 하냐는 이야기도 들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왜'의 질문이 자꾸 나를 움추러들게 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교육청에 보행교육을 요청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너무 어려서,,,,초등학생이 아니어서,,, 아직 아동을 위한 보행교육은 없어서라는 말을 들으며 이런저런 제외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다가 작년 7세, 2학기부터 보행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유치원까지 가는 길, 곧 다니게 될 초등학교의 일부만을 보행교육받는데도 한 학기는 부족했다. 그리고 올해좋은 기업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소망이가 보행교육을 받게 되었다. 남편이 바쁜 나를 대신해서 기꺼이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주었고(너무 당연하지만 육아의 주책임자가 엄마라는 까닭에 가끔은 내가 요청해야 남편도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협조적인 남편에게 늘 감사하다.), 보행교육 오리엔테인션 날 나는 여전히 토요일 하루 동안 대학원 수업을 받느라 많이 바빴다. 남편은 교육과정 중에 안대를 끼고 직선 길을 걸어가면서 눈물이 나는 것을 참느라 혼이 났다고 한다. 나도 몇 년 전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현장 영상해설사'과정을 들을 때 안대를 끼고 다른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지팡이를 짚어가면서 넓은 경복궁을 거닐었을 때 새어 나오는 눈물을 훔치느라 힘들었는데, 남편도 그러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볼 수 있는 엄마, 아빠도 너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밀려오는 미안함....
어쨌든 벌써 오늘이 소망이의 세 번째 보행교육시간이었다. 첫 번째 수업 때는 아빠가, 두 번째는 외할아버지가 오늘은 내가 수업에 참관했다. 오늘은 다행히도 대학원 방학으로 내가 아들의 뒤를 미행 아닌 미행을 해가면서 보행교육받는모습을 참관했다.보행할 때 안내하는 방법을 여러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면서 배웠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내가 먼저 앞서 가고 너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려와도 네가 넘어질 것 같은 순간에도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라도 네가 혼자 씩씩하게 걸어가길 응원하기로 다짐했다. 지금 당장 너에게로 가서 너의 손을 잡아주고, '왼쪽에서 차가 온다. 앞에 사람이 많다. 길이 움푹하게 파여있다.'라고 외쳐주고 싶었지만 조금 늦더라도 네가 스스로 케인을 의지하면서 너의 발을 스스로 떼어가길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어 참았다.
'엄만, 응원할게. 그리고 엄만 기도할게. 그리고 너무 재촉하지 않을게.'
10분이면 갈 수 있는 학교 가는 길을 40분이 다 되도록 걸어가는 너를 따라가면서 힘들기도 했고, 맘이 아려와서 속상하기도 했지만, 또 나는 너를 보며 나를 성장시켜 가고 있다. 엄마도 시각장애아 엄마는 처음이니까 많이 부족해도 이해해 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