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1984>는 출간된 지 8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울림과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 책은 전체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한 개인이 어떻게 거대 권력에 맞서다가 파멸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개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권력 기관의 감시와 사건 조작 등은 현 우리 사회와 상당 부분 오버랩 되는 모습이다.
조지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한 20세기 위대한 작가이다. 유럽에 파시즘 광풍이 휘몰아치던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그는 정치적 목적이 배제된 ‚순수한‘ 문학은 존재할 수 없음을 주장하며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과 불합리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썼다. 그는 하층민의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파리, 런던의 부랑자 삶에 직접 뛰어들었고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탄광촌 노동자의 열악한 생활을 직접 경험하면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사회 계층의 문제와 차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불행했던 그의 유년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 대부분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중산층이었던 그는 뛰어난 재능으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게 되는데, 공부를 못하면 언제든 장학금이 취소되어 학교를 떠나게 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침대에 오줌까지 지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다른 부잣집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교장 선생님에게 말채찍으로 맞기까지 한다.
<1984>는 사랑하던 그의 아내가 죽은 뒤에, 본인 스스로도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하기 전 해에 발표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그는 생전에 병에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그리 어둡지 않았을 거라 말한 적 있다. 이 소설은 그의 삶만큼이나 암울하게 끝을 맺지만, 그가 던진 경고와 메시지는 출간된 지 한 세기를 바라보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정도로 놀라운 예지와 통찰력을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문구를 몇 개 소개해본다.
-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것이 당의 슬로건이다. (..중략..) 필요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말살시키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이를 ‘현실 제어’라 칭했는데,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한다. P.53
-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무산계급에만 있다. 왜냐하면 오세아니아 인구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그 우글거리는 피압박 대중만이 당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내일 아침에라도 당을 산산조각 내버릴 수 있다. 조만간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아직은…! P.99
-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자유이다. 만약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기 마련이다. P.114
- 2+2=5
“그들은 당신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어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속마음까지 파고들었다. P.40
요즘 기사를 보면 진짜와 가짜뉴스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정부는 권력을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이 소설의 내용처럼 권력기관과 언론을 동원해 국민을 겁박하고 사건을 은폐, 조작하는데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엊그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비판은 일체 없이 북한과 가짜뉴스를 운운하며 이들과 투쟁해야 한다는 등 전혀 맥락이 없는 얘기만 실컷 늘어놓았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 자원을 수탈해 가고 강제 노역과 여성을 위안부로 삼는 등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우리 대통령은 정부 요직에 친일파 인사로 채우는 등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1984>는 십여 년 전 유학생 시절에 읽은 책이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와 오버랩되는 것 같아 다시 한번 들춰보게 되었다. 이번에 새로 싹튼 감정은, ‘인류가 존재하는 이상, 조지 오웰이 던진 경고와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한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이 소설은 20세기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손꼽히고, 백남준, 라디오헤드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