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인 스웨덴 (feat. 치기공사)
나의 첫 담당업무는 스플린트 제작이었다. 그렇게 8개월을 꼬박 그 하나에 매달렸고 캐드 디자인부터 마무리까지 혼자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신입이 입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제 나도 다른 일을 배울 때가 되었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팀리더는 나에게 신입을 위해 자리를 옮겨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너는 대부분 네 자리가 아니라 작업실에 앉아 있지 않냐.. 신입이 부서 사람들과 가까이 앉아서 일을 배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인원 증원으로 부서에 책상이 모자란 상태였고 때문에 누구 한 명은 실습생이 주로 쓰던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구석 자리에 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작업 중 갑작스럽게 받은 질문이었고 얼떨결에 그래? 그러마, 하고 끄덕이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치밀었다.
내가 하던 일은 육체적으로 피로가 가장 많은 일이었고 다들 나를 염려할 만큼 난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이제 한 계단을 오르는구나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일어난 그 사건은 일터에 관한 생각과 비전을 송두리째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동료들도 많이 놀랐고 최소한 더 오래 일한 사람에 대한 자리 보장권 정도의 리스펙트도 없는 그녀의 행동에 화가 났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화가 났던 건 왜 그녀는 나에게 그 기회를 주지 않으려 했을까, 였다. 몇 차례 부서 내 다른 일을 배우려 시도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별로 탐탁지 않아 한다는 인상을 받았기에 바쁜가 보구나..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신입이 입사를 하고 리더는 그녀에게 한없이 관대했다. 신입은 하루 반나절 이상을 자리에 앉아 트레이닝을 했다. 나는 받아보지 못했던 배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이건 혹시 인종차별인가.
기공소에는 17명이 근무 중이었고 네 명의 이민자가 있었다. 그중 세 명이 같은 교정 부서였고 모두들 그녀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었다. 그녀는 이민자에게 교정기기 제작을 잘 맡기지 않았다. 8년이나 그곳에서 일한 에리트레아 출신의 오마르는 거의 6년 간 깁스와 스플린트 업무만 해오다가 나와 케냐 출신의 대학동기인 스테이시가 입사하면서 교정기 제작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대신 그가 하던 일을 나와 내 친구가 떠맡게 된 것이었다.
나의 미래가 그러면 나는 그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다른 곳에서 일자리 제의가 있기도 해서 담판을 지을 생각으로 그녀와 면담신청을 했다. 감정은 섞지 않았다. 더 많은 종류의 일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짧은 요구였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알았다고 하면서 얼마 후 나의 트레이닝 일정에 교정기 제작을 넣어 주었다.
스스로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존감의 문제인 동시에 외국에서 살아갈 동기를 스스로 갉아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저 내가 그 일을 잘해서 계속 잘해 줬으면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팀 리더의 자질이 없는 것이고, 이민자인 내가 자신과 같은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녀는 그냥 인종차별주의자다. 어느 쪽이든 나는 그녀가 불편했다. 직위에 상관없이 직장 내 수평적 관계는 스웨덴 직장문화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적어도 기공소에서 지식과 경험을 나눠 줄 수 있는 위치에 선 사람이 지위를 휘두르면 어쩔 수 없이 배움을 갈구하는 사람은 휘둘리게 된다.
휘둘렸고 휘둘리다 슬프고 화가 났다. 그러는 동안 무한히 열려있던 마음은 반쯤 닫히고 감정소비가 덧없음을 깨달았다. 어디든 직장생활이란 하나의 난관이 존재하는 법 아닌가. 스웨덴이라는 이름 때문에 너무 이상적인 직장생활을 상상했을 뿐. 난 더 이상 그녀에게 질문하지 않았고 아침인사 정도 이외의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당신이 아니어도 나에겐 불편하지 않은 더 많은 동료가 있고 그들은 지식을 벼슬로 착각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