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랑
파리에서 떼제베를 타고 Avignon TVG역까지 2시간 30분,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Avignon centre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시내 교통 요금은 2,30유로.
아비뇽은 성곽 내 도시 대부분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많은 사람들이 교황청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아비뇽 교황청은 유명한 역사적 사건인 <아비뇽 유수>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로마의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겼던 사건이다. 이 기간 동안 7명의 교황이 이곳에서 임기를 보냈다.
프랑스 남부 도시 중 아비뇽을 선택한 이유는... 딱히 없었다. 역사에 그리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11월이라 남부가 따뜻할 것이라는 기대 정도. 숙소는 booking.com에서 아파트를 렌트했고 올드시티 정 중앙을 골랐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전통시장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지도를 놓고 봤을 때 대로를 중심으로 아비뇽의 왼편(아비뇽 역에서 직진)은 교황청과 상점, 호텔이 모여있어 관광객이 많고 오른쪽 올드시티는 아파트와 학교가 몰려 있어서 트렌디한 레스토랑이나 바같은 현지인 위주의 생활권이 형성돼 있는 것 같았다. 숙소는 아파트를 리모델링해서 지내기에 부족함은 없었지만 성곽 도시의 특성상 건물과 건물 사이가 매우 좁고 건물 자체도 높아서 해가 들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성곽 도시에 묵을 때는 꼭 로드맵을 펴서 주변을 확인해 보는 걸 추천한다. 되도록이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넓은 대로에 위치한 위층 혹은 성곽의 가장 가장자리에 위치한 아파트가 좋을 것 같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등 유럽 도시에서 아파트를 렌트하는 것은 유적지와 가깝고 옛 건물을 체험해 본다는 장점이 있지만 특유의 냄새와 추위, 약한 전압으로 인해 자주 정전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해가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위치해 있는 건물을 고르는 게 매우 중요하다.
Les Halles d'Avignon은 현대식 건물의 전통시장이다. 스웨덴에 살면서 싱싱하고 맛있는 채소를 먹는 건 꿈같은 일이라 남부로 여행을 갈 때는 전통 시장에 꼭 들르는 편이다. 특히나 이곳은 수산물까지 풍성한 곳이라 시장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들러서 장을 봤다. 시장은 그 나라 사람들의 식생활, 식습관을 엿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비수기고 주말이라 시장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현지인이었는데 유독 한 할머니가 기억에 남아있다.
아침 8시 즈음의 토요일, 상인들은 상품을 진열하고 장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고 몇몇은 구석에 위치한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잠을 깨고 있었다. 나는 크지 않은 시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한 채소가게 앞에 다다랐다. 한 할머니가 시장 사진을 찍고 있는 날 쳐다보며 주인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눈치로 보아, '쟤는 특별하지도 않은 채소사진을 왜 찍는 거야?' 이런 얘기 같았다. 주인아저씨는 딱히 대답 없이 웃어 보였고 혼자서 머쓱해진 나는 그때부터 할머니가 장 보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깐깐한 할머니는 진열대를 따라 채소, 과일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는 가장 상태가 좋은 것들만 골라서 바구니에 담았는데 버섯 몇 개, 감자 두 알, 시금치 한 줌, 방울토마토 몇 개, 심지어 포도도 알알이 떼서 바구니를 채우는 게 아닌가. 한 끼 정도의 적은 양의 식재료였고 할머니가 계산을 요청하자 상인들은 또 당연하게 받아서 채소를 한 가지씩 저울에 달아 계산서를 내밀었다. 당연하지만 또 이상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조금 묘하게 흥분됐고 행복했다.
과일과 채소가 1년 내내 풍성할 것이라는 전제, 맛있는 한 끼를 위해 기꺼이 시장을 오갈 거라는 불편함에 대한 감수, 싱싱한 재료를 고집하는 까다로운 미각... 이것이 프랑스일까. 여행을 하면서 대부분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실제 가정식과는 차이가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유럽 국가의 음식들은 짠 편이고 한 두 개의 향신료 맛이 도드라진 반면 프랑스에서는 어느 레스토랑이든 맛의 조화가 좋았다. 많은 향신료를 사용하지만 튀지 않았고 그래서 질리지 않는 풍미가 있었다. 아마도 이래서 프랑스, 프랑스 하나보다, 했다.
시장에서 할머니에게 감명을 받아 나도 그녀를 따라 저녁에 먹을 스파게티, 바지락 한 줌, 마늘 한 뿌리, 버섯 네 개, 토마토 한 줄기, 포도 한 송이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뽑아 마시고... 소파에 앉아 생각했다. 오늘 뭘 하지? 사실 이게 아비뇽에서 매일 아침 나의 루틴이었다.
계획 하나 없이 아비뇽에서 4일 밤을 예약했다. 계획도 기대도 없었지만 믿을 수 없는 인연과 경험으로 가득했던 아비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이상하게 이곳에서의 시간은 아직도 명확히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멋진 풍경을 만났지만 찍은 사진은 고작 몇 장뿐이고, 많은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의 여운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나의 마음은 프랑스 남부 어느 도시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 그곳에서 느꼈던 생각의 갈래와 여운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