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은 필연적으로 갈구를 부른다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은 필연적으로 갈구를 부른다
아비뇽은 이미 로마 시대부터 존재했던 이 천 년이 넘는 역사적인 성곽 도시다. 그 긴 시간 동안 넓혀지고 높아지고 보수되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골목에 묻은 일상과 조도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골목의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비뇽은 아기자기하게 예쁘고 또 신비로운 도시였다. 하루종일 걷고 또 걸어도 매번 다른 골목을 만나는 미로 같은 도시. 골목마다 소리가 다르고 텅 비면 또 비어 있는 대로 운치가 있는 곳-
하지만 이 도시를 달리 말하면 또 이렇다.
애초에 위험이 제거되고 지키기 위해 지어진 도시. 삶에 필요한 것들만 골라서 정렬된 계획도시이자 계급에 따라 태양을 나눠 가진 철저하게 불평등한 도시. 11월의 화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좁고 긴 골목에는 태양이 잠시 스칠 뿐 머물지는 않았다. 반짝 볕이 들었다 사라지는 골목은 늘 쌀쌀했다. 해를 쫓아서 골목사이를 배회하면서 올려다본 하늘은 각지고 네모졌다. 햇볕이 지면에 닿는 면적과 시간은 길의 너비와 비례했고 길이 넓을수록 주위의 집은 크고 화려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시간을 교황청 광장에서 보냈다. 하루 종일 해가 드는 가장 따뜻하고 경치가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안전이 보장된 요새에서의 삶은 필연적으로 갈구를 부르게 된다. 제한되는 행동에 대한 물리적인 제재 때문에 그렇고 각진 하늘이 주는 심리적 답답함 때문에 그렇다.
해를 쫓아 성곽 밖으로 나갔다가 해 질 녘 다시 돌아오는 길에 온갖 냄새가 뒤엉킨 채 성 안에서 부유하는 공기와 맞닥뜨린 적이 있다. 예민하지만 쉽게 익숙해지는 후각처럼 골목과 골목 사이에 퍼져 있는 세뇌된 안정과 평화는 고여있는 공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안전에 대한 갈망이 가져오는 해방에 대한 갈구 같은 이중적인 마음이 이 성곽 도시에 서려 있다고 생각했다.
성곽에 올랐다. 강 너머의 산, 그 산 위에 떠오른 달과 노을이 만들어낸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아마도 이런 풍경이 자극한 상상의 이야기들이 수많은 모험담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갈구하지만 일탈의 선택은 늘 어렵다. 그때도 지금도 그렇다.
안정에 대한 갈망을 지우면 자유로움이 찾아올까. 성벽이 사라져서 둥근 하늘을 되찾게 되면 그로 인해 맞닥뜨릴 위험이 조금 덜 두려워 질까. 이중성, 성벽이 갑갑하지만 위험이 겁나는 두 개의 마음. 나는 성벽을 부술 준비가 되어 있나. 나는 저 황홀한 풍경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모험가의 자질인가. ---아비뇽이 나에게 던진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