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직장생활
대학을 졸업하고 주립 기공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고심 끝에 선택한 직업이었고 이민 후 첫 직장이었기에 특별했다. 무엇보다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스웨덴에서 노동자의 삶은 어떨지, 기대에 부풀었던 게 사실이다. 공공기관이라는 조건 역시 마음 한쪽을 든든하게 했다.
3개월 만에 정규직 자리를 얻었고 2년 차에 접어들던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치과 총괄 셰프가 이코노미 관련 PT를 한다며 미팅을 잡았고 예정 시간보다 30분쯤 늦게 나타난 그들은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로 미팅을 시작했다. 그리고 부속 기공소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통보했다. 고려와 통보라는 말을 함께 쓰는 이유는 그들은 고려라고 했지만 이미 결정은 되었고 법적절차를 지키기 위해 예고된 통보를 던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달 후 최종 결정을 들고 오마, 하고 그들이 떠난 후 동료들은 모두 패닉에 빠졌다.
이미 정해진 결정이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부분이 낮은 임금을 감내하고 공공 기공소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정년의 보장이었을 텐데 갑작스러운 결정에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저 조용했다. 침울하고 적막하게 한 달이 흘렀고, 예상한 대로 그들은 폐업을 선언했다. 5월이었다. 그보다 기암 할 소식은 7월 휴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해고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것이었다. (해고가 결정되면 근속 기간에 따라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일 년 간의 해고통지 기간이 시작되며 공공기관은 대부분 6개월로 정해져 있다. 6개월 간 더 근무하며 이직이나 학업을 준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신을 차릴 수도 없게 그들은 계획한 대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HR에서 파견 온 사람들은 Replace라는 이름으로 다른 부서의 일자리를 제안했지만 대부분 전공자가 아니면 지원할 수도 없었고 그렇지 않은 자리는 매우 낮은 임금의 단순 작업을 하는 일뿐이었다.
연말이면 그대들의 노고에 감사하다 말하던 사람들이 나가라고 나가라고 거세게 밀어내고 있었다. 2주 정도 이 과정을 거치면서 스웨덴이 가진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타이틀이 허울임을 알았다. 아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근로조건과 휴가, 육아휴직, 병가휴직, 돌봄 휴직 등등 수많은 휴직제도를 고려하면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일자리의 지속성은 보장이 어렵다. 스웨덴에서 해고는 어렵지만 재정을 이유로 한 해고는 아주 쉽고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실망>이었다. 이 나라에 대한 내가 가지고 있던 기대에 대한 실망, 오랫동안 공부했던 시간에 대한 실망, 회사에 대한 실망, 사람들에 대한 실망.... 꽤 오랫동안 이 감정이 날 잡아 삼켰다. 실망이 원망이 되고 원망이 슬픔이 되고.. 이런저런 감정의 굴레를 돌고 돌고 돌다가 1년이 지나 이제야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왜지? 일자리 하나에 나는 왜 그토록 휘청거린 걸까. 나답지 않았다. 다른 일을 시작한 후에도 그 타격감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자라고 있었다. 왜일까? 왜였을까?
해외에 살면서 직업은 한국에서 보다 더 큰 무엇이었다. 쓸모를 증명하는 것 이상의, 존재와 연관된 것이었다. 돌아보니 그랬던 것 같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아무거나 하고 싶지 않았고, 그곳에서 그것을 하고 있는 분명한 사람이길 원했다. 이곳에서 살아갈 이유 중 하나로서 직업은 그렇게 중요했나 보다. 직업 하나를 잃었을 뿐인데 지난 10년이 쓸모없어지는 경험을 하고 난 후에야 나는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났고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깊은 슬픔에 몰아놓고 나서야 괜한 자존심을 세웠구나, 깨달았다.
몰두해야 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집중했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다. 돌고 돌아서 다시 그곳으로 간다. 먼 길이었지만 분명해진 느낌이다. 오랫동안 갈팡질팡했던, 랭보를 만나고 조금 알 것 같던 그것이 이제야 맑게 개인 듯 또렷하다.
그저 직업을 위한 공부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 기공사로서 직업은 이제 나와 인연이 다 한 것 같다. 주립기공소를 나와 일을 했던 다른 기공소도 안녕을 고했다.
불만과 불평만 남은 노동의 현장을 이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