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아스

오늘의 생각

by 비누인형

토비아스라는 청년이 있다. 처음 봤을 때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3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누구보다 밝고 쾌활해져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의 모든 결정은 신이 가리키는 대로 따른다고 했다. 갑자기 금식을 시작했을 때도 신의 뜻이라고 했고 갑작스럽게 일본으로 떠날 거라며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신의 계시라고 했다. 신이 인도한 일본행을 앞두고 무척이나 들뜬 그를 보면 신기하기도 기묘하기도 하다.


오늘은 피카타임에 발코니에 둘이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어쩌다가 가족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토비아스는 부모의 싸움 때문에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이혼을 했지만 그때 채워지지 않은 가족의 빈 틈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위대해서 가늠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궁금해졌다.


신은 존재하는 가? 그렇다면 신은 구원자인가,

아니면 빈 마음을 파고드는 스스로 만들어낸 안식처인가.


불자지만 무신론자에 가까운 나의 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가정에서 느꼈던 불안은 그에게 결핍을 가져왔을 것이다. 결핍이란 한 인간의 삶의 전반에 걸쳐 모든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제반사항으로서 중요하다. 비어있는 곳을 채우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나는 그것이 결핍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부모와 가지고 싶었던 교감, 선택의 기로에서 받고 싶었던 무조건적인 응원, 힘들 때 목말랐던 위로... 모든 마음을 그는 신에게 투영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절대 동의하지 못할 나의 생각이다.


그가 동의하지 못할 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조금 더 확대해 보자면 이렇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 보인다는 신은 어쩔 수 없이 전지전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믿음을 주기 위해서/갖기 위해서 행해지는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무조건적인 믿음이 행해질 때, 신은 그저 선택의 도피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은 신의 뜻이다,라는 관점에서 부모의 부재조차 그의 뜻이라면 그는 한 인간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그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신에게 안착한 인간에게 주고 싶은 깨달음은 무엇일까. 결국 그렇게 누군가를 신의 세계에 입문하게 만드는 거라면 그건 조금 치졸하지 않나. '나약한 인간'이라는 말과 '절대적인 존재'라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오는 일방적인 위안은 건강한 것일까.

미안 토비아스. 너에게 나는 교만하고 무지한 인간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신을 추앙하기엔 어려운 일이니 화를 내지는 말으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짜로 신이 있기를 바란다. 너를 위한 신의 위로와 선택이 네 삶을 덜 버겁게 만든다면 그것이면 됐지. 논리 따위 뭐가 중요하겠어. 그의 선택이 너를 이끌어 어딘가에 닿게 되고 무엇이라는 결정체로 남게 된다면 그것으로 됐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애쓰는 너에게 신은 절대자일 수도 여정을 위한 도구일 수도 있을 거야. 그건 나중에 알게 될 일이지.

그저 행복하기를. 팍팍한 너의 삶이 무한한 사랑으로 충만해 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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