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근무를 마치고 커피숍에 들렀다. 메뉴에 없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만들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묻는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얼음을 넣고 에스프레소를 부으면 되지 않을까? 하니,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려 얼음 한 알을 넣어 주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더니 '이걸 원한 거 아니야?' 한다. '아니야 그냥 줘',라고 하니 '아니야. 내가 만들어 줄게. 설명을 조금만 더 해줘', 한다. 아는 대로 설명을 했더니 자리에 가서 기다리면 가져다준단다. 그리고 잠시 후 명랑한 아가씨는 근사한 유리잔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들고 짠하고 나타났다. '우아!' 하고 감탄했더니, '고마워, 네 덕분에 아이스아메리카노 만드는 법을 배웠어', 하면서 찡긋 웃어 보인다. 아, 이 아가씨 너무 귀엽다, 생각했다.
한국에선 너무나 익숙한 찬 음료들이 이곳에선 몇몇 프랜차이즈에서만 주문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여름이 20도 내외로 덥지 않고 해가 나지 않으면 오히려 쌀쌀하기 때문이다. (35도로 들끓었던 여름에 한국을 방문한 스웨덴 가족들이 죽어도 따뜻한 커피를 고집한 것을 상기해 보면 이곳 사람들이 차가운 커피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기후가 식생활/생활방식을 결정한다던 교과서의 구절을 이렇게 체험한다.
이곳으로 이주를 하고 첫여름이었다. 남편은 '여름에 입을 재킷을 하나 사야겠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재밌었다. 여름에 입을 재킷이라니! 여름에 왜 재킷을 입는다는 거야? 하면서 웃어 댔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그 의미를 알았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였지만 공기는 늘 차가웠고 구름이라도 끼는 날이면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졌다. 태양이 떠 있는 시간과 온도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고, 여름이 추울 수도 있다는 것과 해가 길어 광합성을 많이 해 식물이 잘 자랄 것이라는 예상도 모두 빗나갔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세 시간을 달리면 북방한계선을 만나고 아무리 백야라 해도 그곳에선 작물을 재배할 수가 없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다. <가을 x 코스모스>로 알고 있던 공식이 이곳에선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고 아무리 더운 날도 바다는 얼음장처럼 차가울 수 있다는 것, 해만 나면 열일 제쳐두고 일광욕을 즐기는 외국인의 일상을 이해하게 된 것도 그때였다.
수박을 먹다가 씨를 툭 뱉기만 해도 마당에 싹이 나는 한국의 여름에서 깻잎 하나 따자고 매일매일 물 주면서 안으로 밖으로 화분을 들고 부산을 떠는 여름을 살고 있다. 그것마저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 요즘에는 안 먹고 말지로 바뀌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여름은 한국에서도 이곳에서도 즐거운 계절이다. 찜통 같은 더위에 계곡에서 닭구이 먹고 달큼한 낮잠을 자는 한국의 여름, 따뜻한 해와 찬 공기가 이상적인 쾌적한 스웨덴의 여름. 다만 이곳의 여름이 조금만 길었으면 좋겠다. 8월부터 이미 추워지는 건 반칙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