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머리, 어깨, 허리, 무릎의 삐그덕 거림을 느끼며 건강 우려증이 점점 커져 가는 슬픔도 있지만 한 편으론 인간관계가 단순해지면서 삶이 심플해지는 좋은 점도 있다.
돌아보면 젊은 날의 많은 시간을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쏟았다. 누군가의 아들/딸, 누군가의 엄마/아빠일 텐데 소중히 하자, 이해하자, 저러는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노력했던 시간의 끝은 대부분이 실망이었고 억울함이었다. 반복되는 후회들이 쌓여서 마흔이 넘어서야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어긋나는 누군가와의 만남은 여전히 고되지만 이제는 그이들과의 만남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시간과 마음이 투영된 큰 에너지는 어긋남을 바로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더 좋은 날들을 보내기 위해 쓰여야 하니까. '필요'와 '불필요'를 따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나눠져야 하니까.
나는 중간에 있는 사람이었다. 먼저 연락하고 모임을 만들고 함께 시간을 보낼 궁리를 하던 발랄한 인간. 그러다 문득, 어느 깜깜한 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에 오로지 나를 위해 연락할 누군가가 내게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됐다. 나의 어두운 마음을 발견해 줄 누군가가 내게 있는가. 나의 미세한 마음의 변화를 알아줄 만큼 자주 혹은 끊임없이 나의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가 내게 있는가. 당신들에게는 있나?
내가 눌러댔던 수많은 전화번호와 메시지들은 모두의 즐거움을 빙자한 나를 위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넘치지만 머물지 않는 말들, 일방통행의 몸짓, 솔직을 가장한 경솔한 대화들, 무게가 없는 우리...
관계는 감정이 깃든 상호적 소통에서만 유지된다. 그리고 모든 일방적인 관계는 더 많은 마음을 쏟은 사람에 의해 종료된다. 더 심플해질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