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기쁨

by 비누인형

해가 가장 좋은 시간에 밖으로 나가. 하늘은 파랗고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 잎들이 반은 길바닥에 반은 가지에서 쉼 없이 흔들려. 저 너머에 낮게 떠오른 태양이 나뭇잎이 흔들릴 때마다 그 사이로 눈부시게 빛나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가슴을 뛰게 해. 비현실적인 순간이야.


차가운 공기가 쾌적해. 자작나무에 뿌리를 내린 이끼들이 한창 물이 올라 꽃처럼 피었네. 작은 우주를 들여다본 것처럼 신비롭다. 노랗고 붉은색이 구석구석 촘촘하게 박힌 가을이 이리도 좋은 계절이었나. 색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는 일이었었나.


길 위를 걷다 보니 기분이 좋아. 세상 모든 일들이 쉬워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


해가 가장 좋은 시간에 거리에 있을 수 있어서, 단풍 사이로 반짝이는 해를 볼 수 있어서, 차가운 공기에 차분해질 수 있어서, 이끼의 시간을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어. 정해진 일과를 살다 보면 놓치게 되는 순간들이잖아. 있어야 할 곳에 있다 보면 놓치게 되는 순간이잖아. 창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만 보는 것은, 문득, 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시차, 속에서 참 오랫동안 살아왔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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