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위의 낭만 : 튤립

짝사랑이자 첫사랑

by 당연하다

나의 꽃밭 위 첫사랑은 튤립이다.

기념일 꽃다발도 감흥 없던 내가 튤립을 심게 된 것은, 순전히 아산 여행 때문이었다. 여행 일정 중 ‘세계꽃식물원’이 우연히 눈에 띄었고, 뭐라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들렀던 그곳에서는 바우처 가격만큼 식물 또는 원예용품으로 교환을 해준다고 했다. 낸 돈이 아깝다는 마음으로 골라잡은 튤립 중 가장 깨끗해 보이는 녀석들로 한 망 집어왔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튤립 심는 것도 귀찮아 그저 방치해 뒀다. 출근길에 생각난 구근은 ‘쉬는 날 여유롭게 심어야겠다…’, 쉬는 날이 돌아와 침대에서 꾸물거릴 때면, ‘내일 오후 출근이니, 오전에 심어야지...’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거실 탁자에 뒀던 구근 뿌리에 곰팡이가 핀 모습을 발견하고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어 몇 년 전 엄마가 사둔 배양토와 화분 속 흙들을 모아 그 밤에 튤립을 심었다. 네이버와 유튜브, 누릿해진 원예용 책과 엄마의 기억을 꺼내고 섞어, 겨우겨우 튤립을 심어냈다.




내 손으로 심어내서 그런가. 우습게도 그날부터 튤립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늦가을부터 한겨울 사이에 심어야 하는 튤립을 게으른 주인이었던 나는 2월 초에 심어버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베란다를 들락날락거렸다. 혹여나 밤새 추위에 죽지는 않았을지. 내가 너무 늦게 심어 덥지는 않을까. 물이 적지는 않았을까. 너무 많았을까. 영양분은 있는지. 너무 많으면 썩는다는데. 그러면서 행여라도 마트에 갈 때면 생선가게를 지나치지 못하는 고양이처럼 원예용품코너를 떠나지 못하고 영양제를 사고 알비료를 구매했다.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베란다에 앉아 대답 없는 튤립에게 말도 걸어보고, 웃음 없는 흙 위를 손끝으로 간지럼도 태워보았다. 그러다가는 괜스레 야속한 마음도 들곤 했다.

야속함보다 걱정이 앞서던 어느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흙을 살짝 들춰보니, 아니. 작고 튼튼한 새싹이 흙을 뚫고 올라오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때부터 튤립 새싹은 무럭무럭 자라나 땅을 뚫고 머리를 세워냈다. 아기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구근에서 중력을 거스르고 올라오는 이 빳빳한 연두색의 싹이 기특하고 경이로웠다.

하지만 꽃을 보기까지의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었다. 죽지 않고 싹을 틔어냈다는 기쁨도 잠시, 무성하게 자라는 줄기와 이파리는 다시금 나를 초조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매일 아침,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엄마에게 "오늘은 꽃 폈어요?"라는 질문이 아침 일과가 되었다. 햇빛의 농도가 짙어져도, 해가 조금씩 길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망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섯 개의 구근을 제법 큰 화분에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쑥쑥 자라나는 싹들의 자리가 비좁아 보여 튤립끼리 분리해 내는 분갈이 작업도 해주었다. 낮에는 봄바람이 차오르는 햇빛을 담뿍 받을 수 있도록 베란다에 두었다가, 밤에는 혹여나 꽃샘추위가 튤립에게 샘을 낼까, 집 안으로 들여왔다. 마치 갓 짝사랑을 시작한 사춘기 남학생 모습처럼 모든 것이 서툴렀고, 그 서투름이 사랑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보름정도 지났을까? ‘혼자 하는 사랑’이라는 새침한 꽃말을 가진 노오란 튤립 꽃망울 하나가 줄기 위로 달렸다. 어쩜, 내 모습을 지켜본 듯한 꽃말에 내 짝사랑을 들킨 것만 같아 민망했다. 수줍게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며 보여준 꽃잎은 비단처럼 부드럽고 비단결처럼 고운 결을 자랑했다. 노란 꽃망울을 틔어낸 한 송이는 대범하게 꽃을 피웠고 뒤이어 한 두 송이도 꽃망울이 달렸지만, 더 이상 중력을 거스르며 자라나는 것이 힘이 들었던지, 시들어만 갔다. 물과 비료를 듬뿍 주었지만 꽃을 틔우지도, 다시금 연둣빛 줄기가 올라오지도 못했다.

연둣빛 줄기는 점점 초록빛을 잃어갔고 끝내 노란색을 지나 갈색이 되어버렸다. 힘차게 추위를 뚫고 올라왔던 초봄의 연둣빛 새싹들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그렇게 우리는 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조금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튤립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종지부를 찍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첫사랑에 어쩔 줄 몰라하며 어수룩했던 것도 1년이 다 되어간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첫사랑은 대개 가슴 먹먹한 이별을 수반한다. ‘내가 조금만 더 이러했더라면’ 혹은 ‘그때 내가 이랬더라면’ 등의 부사들이 한동안 첫사랑을 아프게 추억하도록 만든다. 사랑의 서투름은 썩 아름답지는 않지만, 언제나 필요로 한다. 그 미성숙함으로 인해 성장하고, 다음번 사랑은 그러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성숙하니 말이다. 언젠가 사랑이 사량(思量)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사랑함은 어쩌면 생각하고 헤아리는 마음에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꽃을 사랑하되, 꽃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려야 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과하게 물을 주거나, 비료를 줄 경우, 그 꽃은 결국 그 사랑에 익사하게 된다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 참고, 내 표현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튤립을 그저 계절에게 맡기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햇살의 온도를 섞은 바람이 불며 노오란 튤립이 꽃망울을 틔울 것을. 나는 너무나도 늦게 깨달아버렸다.


짝사랑과 첫사랑의 공통점은 ‘서투름’에 있다고 생각한다. 짝사랑은 상대의 알 수 없는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해 어설프고, 첫사랑은 해본 적이 없으니 어수룩하다. 나에게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던 튤립이 올봄엔, 조금 더 성숙한 꽃을 피우리라 기대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