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만남

by 라온지니

오늘도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그와의 약속장소로 향한다.

요즘은 만날 때마다 여관으로 향했던 것 같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매번 여관에 데리고 들어갈 때마다 오늘은 아닌 것 같다, 다음으로 미루고 싶다, 등등의 이유를 대며 그와의 관계를 피하고 있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화를 잘냈다.

엄마와 마음이 맞지 않을때도 매번 화를 내셨고 결국은 엄마에게 손찌검을 한후 싸움이 끝이 나곤 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장녀로서 부모님의 말씀이나 어른의 말씀을 거역해 본 적이 없다.

그 남자에게는 싫다는 의사표현을 계속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사람은 계속 내게 관계를 요구한다.

너무 무섭고 두렵다. 남자와의 관계란 너무 두렵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결혼을 하고 난 후의 순서로 지키고 싶지만 그 사람은 만남 때마다 관계를 요구하는 중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남자와의 관계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이 사람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고 또한 나는 아직 결혼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대학 2학년의 나는 먹고사느라 바쁘신 부모님과의 의논도 어렵고 나의 판단으로는 더더욱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렵기만 하다.

이러한 문제로 그 사람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인 것 같아 몇 번의 이별도 해봤지만 이별이 두려운 나는 헤어짐의 시간을 견디기도 힘들다.

훗날 그와의 30여 년의 결혼 생활에서 크고 작은 갈등의 순간에서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부분이 그는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나를 버틸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버팀목이 없다는 거였다.

그는 날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갈등의 순간에서 결혼의 의미를 찾을 수도 없었고 앞으로의 미래를 약속할 수도 없었으니 믿음의 기반이 없는 결혼생활이란 얼마나 지옥이었을지 가늠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오늘도 여관방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해야 잠들게 해서 이 밤을 무사히 지날 수 있을지의 고민을 가득 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약속장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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