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동경하든,
스물한 살 때부터였나, 내가 막연히 자차에 대한 로망이 생긴 게. 나는 어릴 적부터 인형 욕심, 학용품 욕심, 명품 욕심 따위의 물욕이 없는 편이었지만 자연스레 성인이 되면서 멋진 어른에 대한 이유 없는 갈망이 내 안에 자리 잡은 듯했다. 자신의 차를 운전하며 제약 없이 이곳저곳을 다니는, 한 손엔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는 그런 모습에 대한 동경이 생겨난걸 보니. 아무래도 그건 21살에 훌쩍 떠났던 뉴질랜드라는 땅에서 나보다도 어린 10대 친구들이 끌고 다니던 낡은 중고차를 타면서부터였나 보다.
차에 대해서 문외한이던 나는 그들이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 지는 영 관심이 없었지만 그 차 안에서 한 손으로 핸들을 휘감으며 흥얼거리던 노래가 무엇인지에는 꽤 흥미가 있었다. 그곳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까닭으로 뚜벅이가 생활하기엔 가히 힘든 환경이었기에, 한국에서라면 쳐다도 안 봤을 제각각의 낡아빠진 차들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대중교통시설에 감사한 마음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무면허의 서러움으로 1년을 타지에서 보낸 후 한국에 가면 꼭 운전면허를 따리라 마음먹었다. 세 번의 면허시험을 통과해야 했던 뉴질랜드의 까다로운 과정과는 달리, 한국에서 면허 따기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들은 총 3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면허 취득이 가능했는데 차례로 ‘러너-리스트릭티드-풀’의 순서로 시험을 봐야 했고, 러너 단계에서부터 드라이버 라이선스를 주지만 반드시 풀 라이선스를 소지한 동승자가 함께 탑승해야만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등 복잡한 규율이 존재했다. 이와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70만 원을 들고 학원에 찾아가 등록을 하면 각자 필기시험을 본 후 학원에서 지정해준 선생님과 몇 번의 수업을 받고 기능시험과 도로주행을 하면 끝이다. 면허를 따기만 하면 그 누구든 혼자서도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단 말이다.
그런데 차를 몰고 싶어 무턱대고 면허를 땄지만 막상 나는 차도 없었고 또 한국에서 운전할 생각을 하니 막막한 마음뿐이었다. 나는 뉴질랜드의 드넓은 하늘에 걸쳐진 커다란 구름들 아래 쭉 뻗은 도로를 쌩쌩 달리고 싶었던 것인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의 로망도 있었고 면허를 취득한 게 아까워 중고차를 알아보는데 문득 내게 ‘자동차’라는 것이 정말 필요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공책을 펴고 차를 사야 할 이유와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적기 시작했는데, 적고 나니 내가 진정 갖고 싶은 것이 차인지 아니면 외국에 사는 이민 2세의 평화와 자유가 가득한 삶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닭장 같은 아파트에 갇혀있지 않았고 성탄절이면 트리와 전구로 알록달록 예쁘게 꾸미는 그런 개성 가득한 주택에 살았으며, 만 16세의 나이부터 운전을 하고 친구들과 노을 지는 바닷가를 달리며 오렌지빛 모래사장 위에서 비치발리볼을 하던 그 규정되지 않은 삶이, 나에게는, 갈망의 대상이었나 보다.
한국에서는 왜인지 벤츠나 BMW 아니면 적어도 제네시스 정도는 타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멋들어진 영 앤 리치의 삶을 사는 MZ세대 같이 보이니깐 말이다. 인스타그램에도 자랑할 수 있고. 한국에서 가난은 치부이자 약점이다. ‘노력하지 않은 삶’이나 ‘능력 없음’ 등으로 대체 가능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대한민국에서 09년식 국산 중고차를 타는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스물다섯 살 평범한 회사원인 필자는 뉴질랜드 키위*들이 타던 아무도 동경하지 않는 이름 없는 차들이 그러했듯, 초라한 모습의 중고 쉐보레를 타더라도 당당하게, 그리고 자유로이 언젠가 저 새벽의 잠수교를 건너리라 다짐한다.
*키위:뉴질랜드 사람을 지칭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