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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May 31. 2022

교수 20년 차는 신내림을 받는 과정인가 싶다

나도 내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의 일이다. 수업 시간을 몇 분을 한참 넘긴 시각, 학생들의 집중력은 흐트러진 지 오래, 엉덩이는 이미 들썩이기 시작했고, 짐을 싸는 소리도 들려왔다. 수업 도중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수업을 마치고 교수님께 질문하기 위해 남들보다 느긋하게 느릿느릿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정리할만한 짐을 꺼내놓지 않아서 가방 문 하나 닫는 것이 고작이었다- 


원래라면 텅텅 비어야 할 강의실에 이상하게 학생들이 줄지어서,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어쩌면 가장 유명하고 재미있는 놀이공원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처럼- 들이닥쳤다. 아무래도 법학과 학생들인 듯싶었는데, 교수님을 찾는 학우들도 있었다. 교수님은 이후에 위원회 일이 있다 하셔서 급히 가봐야 하는 사정이라 다른 학우의 질문은 뒤로 한 채 급히 가셨다. 나는 어쩌다 운이 좋게 따라가서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계단을 따라 내려가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수업에 대한 질문 하나를 마치고, 가장 궁금한 질문을 드렸다.  


어제 알림이 울린 과제에 대한 코멘트였다. 그 코멘트를 처음 읽고, 두 번, 세 번 읽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다시 읽었다. 그러고 나니 얼핏 이해가 될 듯도 싶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그리 되려면 내가 어떡해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한다면 그리 말한 대로 행동할 수 있으며,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해. 물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걷고 걸어 찾는 방법도 있겠으나 나는 교수님께 아주 작은 힌트라도 받아 토끼가 될 수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었다. 안 그래도 뒤처진 거북이는 느릿한 제 걸음으로 걷는 게 무척이나 싫으니 말이다. - 아 세상의 거북이들이여, 미안하지만 방금 말한 거북이는 오로지 '나'였으니, 부디 그들의 걸음을 비난한 것이란 오해는 하지 말아 주길-


연애편지에 비유한 내 답안은 상대방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는 무미건조한 모범답안일뿐이란 코멘트였다.

하지만 주어진 과제는 이미 교수님이 정하신 답안이 있는 상황이라 그 답을 어떻게 적느냐가 성적의 중요한 키 포인트였다. 법학 전공이 아닌 내게 - 법학 전공이어도 어려울지 모른다. 공학 전공인 내게 공학은 무척 어렵다. 그러니 묻지 마라- 기존에 있던 판례 찾기, 법률 답안 작성법뿐 아닌 판례에 대한 해석과, 의견을 덧붙이는 것이 얼마나 무자비한 일인가. 내 의견을 내었을 때 부족한 내 의견에 돌아오는 정확하고 알맞은 해답에 나는 낯을 들 수 없을 것이고, 그 상황은 무척이나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 수도 있다. - 고작 교양으로 듣는, 공학 학부생 주제인 제가 제 의견을 얹어도 되는 건가요? 심지어 대법원에서 결론이 지어진 판례에 대해서요. -


고심해서 한 질문은 사실 상 엉터리로 해버렸다. 그래서 오해가 생겼다. - 사실 오해가 생긴 것인 지 교수님이 그저 제 할 말을 하고 싶어 처음부터 이야기한 것인지는 오로지 본인만 아실 거다. 아마 나는 둘 다라고 생각한다.- 연애편지에 비유한 자신의 코멘트가 이해되지 않냐는 말부터, 심심한 사과와 유머도 선보이시곤, -유머가 심심한 것이 가장 문제다. 어느 유머가 심심하냔 말이냐, 그건 유머라 불러 줄 자격이 없다.-  어느덧 교수님 연구실에서 나와 5층의 층계를 내려와 주차장을 한참이나 가로지른 상태였다. 여전히 내가 원하는 답변은 듣지 못한 상태였다. 


어쩌다 교수님 차에 타서 위원회 장소로 가는 길이었다. 온갖 비유와 이야기가 시작됐다. -물론 내가 아니라 교수님의.- 내가 차에서 한 말이라곤 고작 "네", "네 엡", "넵!" , "아하 네", "네에?"였다. 그래도 변주를 줘서 다섯 가지나 된다. 듣는 교수님 입장에선 아마 내가 낼 줄 아는 소리가 하나뿐이라 생각하셨을지 모른다. 나는 정해진 답변을 찾아야 하던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다. 아마도 앞으로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교수님은 지난번과 같이 또 나를 추론하기 시작했다.  

"너는 책을 평균보다는 꽤 읽는 편이다. 근데 350페이지의 분량의 책도 4시간 안에 다 읽어내지 못할 거야. 왜냐 책에 밑줄 그어가며 하나하나씩 찾아가며 읽으니까. -와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두 눈과 두 귀를 의심했다. 진짜 귀신 있는 거 아냐? 무신론자인 내가 신의 존재를 믿을 뻔했다. 교수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신데, 혹시...?- 그게 문제야. 저자도 모르는 내용을 네가 외우려고 하니까. 문장 하나하나를 외우는 게 아니라 나만의 프레임을 갖는 게 중요하지. 다독을 해야 해, 일주일에 적어도 1권 이상의 독서는 필수지. 물론, 너희가 시간이 없고, 그것보다 해야 할 것들이 많은 건 충분히 이해하고 알고 있어...." -조금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교수님에게 내 10년 후는 어떨 것 같냐고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제 대운은 언제 오나요..?" 안 그래서 다행이다. 그랬다면 창피해서 학교 가긴 글렀다. -


교수님은 내게 너 내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다가 집 가는 길에 또 기분이 나빠질 거고, 집에 가서 샤워하고 난 후에 쉬면서는 또 그렇다 할지 모르지. 그러다가 또 자기 전에 생각 날 거야. 그 양반 말이 잘못됐다고 말이지. 그렇게 네 생각을 만드는 거야. 


"너무 빨리 가려고 하지 마, 너는 너무 네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  








P.S. 그래서 나는 어떻게 됐을까. 

교수님의 말씀은 정확했다. 나는 말한 대로 똑같이 행동했다. 하 예지력이 있는 걸까, 아님 정말 신이라도 들리신 건지... 지금도 어쩌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쓰시는 걸 알고 계실까 봐 무섭다. 제발 이건 알지 말아 주세요.....













나를 고민하게 한다. 

나는 굉장히 큰 고민을 하고 있다. 

어렵고,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게 올바른 길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무척 힘이 들고, 다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걸 이겨내면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걸 대충이 아니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일생 일 대의 기로에 서 있는 기분이다. 어쩌면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아주 작은 도랑의 돌다리여도.

나는 지금 여기서 휘청일 만큼의 균형도 뭣도 없다.

그러니 다리 근육을 키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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