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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주 May 05. 2023

여유, 하지만 집중

시작, 시작, 시작. 앞으로 가자.

오랜만에 글을 쓴다. 글이 4월 30일에 머물러 있다. 루틴을 우선시하자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과제 폭풍이 불어닥치면 쉽게 외면받는 것이 루틴이다. 지금 당장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구석에 매몰차게 몰리다보면 루틴 자체를 까먹는다. 이는 학생의 신분으로 과제를 해야만하는 숙명이면서도, 자가성장을 놓치는 포인트인 것 같아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여유가 생기자마자 돌아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아직 죽지는 않았나 싶다.


저번 주 목요일 이후로 정신없이 달려오다 어제를 기점으로 숨이 좀 트였다.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중간점검이 끝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좋지 않은 피드백과 욕도 많이 먹었지만, 어제만큼은 좋은 피드백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번 한 주동안 팀원들과 작업 프로세스를 한글에서 피그마로 옮겨오느라 고생을 좀 했는데 그래도 고생 끝에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힘들었지만, 중간중간 팀원들과 재밌는 시간이기도 했다. 산 하나를 넘었고, 다음날이 어린이날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둥실거렸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에 설레었지만 방심하고 싶지 않았다. 여유를 즐기면서 쉬는 것도 좋지만, 여유가 났을 때 미래의 고생을 엔빵하는 것도 꽤 괜찮은 전략이다. 그렇게 쪼갠 시간에 확 집중하고 뒤에서 팍 쉬어버리면 되니까.


그래도 재밌게 시간을 좀 보내고 싶어 민규랑 강의실을 잡고 팽이를 쳤다. 대학생이 뭔 메탈블레이드라도 치나 싶겠지만, 교수님과 하는 미니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자세히 설명하긴 복잡하지만, 어쨌든 팽이의 신이 되어 오라는 명을 받았다. 저번에 방에서 골똘히 연구하며 30분간 쳤던 저력을 발휘할 시간이었다. 저번에도 느낀거지만 이게 생각보다 엄청 재밌다. 맘만 먹으면 이리저리 컨트롤 할 수도 있고, 숨이 끊어지지 않게 계속 유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채찍으로 팽이를 쳐가는 손맛이 장난아니다. 팽이의 상단부에 정타로 맞으면 경쾌한 소리와 함께 팽이가 속도를 머금는다. 그렇게 여러 번 맞아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는 팽이는 속도에 비해 바다같이 고요하고 안정감을 가진다. 외부에 어떤 것도 팽이에 접근치 못하고 팽이를 우러러보는 듯 싶다. 그러다! 다시 이리저리 빙글빙글. 팽이를 엉성하게 괴롭히는 채찍질에 다시금 중심을 못잡고 휘청거리다 꽈당 무너진다. 아직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팽이를 어떻게 치는지에 대한 기본기는 꽤 잡혔다. 뭐든지 기본이 중요하니까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또 꾸준히 연습해야겠다.


어린이날이다. 어제 3시 40분에 잤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밤을 보냈다. 그동안 맨날 운동하랴 과제하랴 오자마자 자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냥 맘놓고 핸드폰을 봤다. 사실 저렇게 늦게 잘 생각은 없었지만, 상관없다. 스마트폰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다가 알아챈 시간에 흠칫했지만 스트레스 받지 않았다. 다음 날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좀 더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잠을 청했다.


민규랑 9시에 보기로 했지만 11시에 일어났다. 역시 피곤했다. 후회는 없었지만 역시 정상적인 루틴이 좋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다. 지하식당에서 아점을 대강 해치우고 밍기적거리다 1시 반에 하나은행에 입성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욱 동아리 과제만 했다. 중간중간 쉬운 과제와 틀어놓기만 하면 되는 강의 영상도 해결하면서 말이다. 오늘은 사실 그렇게 집중하진 못했다. 마우스가 없어서인지, 마음이 떠서인지.. 사실 동아리 주제가 좀 어려워서 그런 것도 있다. 계속 하는데도 감이 잘 안잡혀서 맴돌다보면 어느새 꾸벅 졸고있다. 오늘부터 비도 추적이는데, 이것도 한 몫 단단히 한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공기 속에서 눈을 굴리고 손을 쉴새없이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흠흠, 슬쩍 탓을 돌려본다.


아무튼 저녁을 먹고 난 지금 8시부터 11시까지 민규랑 최고의 집중을 다짐했다. 11시에 찾아온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맥주 한 잔 걸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초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빛의 속도로 글을 써내리고 있다. 글도 내가 쓴 것 중에 제일 긴 것 같다. 비록 생각의 나열이 드문드문 한 일기 형식의 글이지만 방금 먹은 닭가슴살을 소화시키기에 이것만한 주제도 없다. 그리고 오늘따라 글도 잘 써지는 기분이 든다. 마음가짐이 단단하니 글도 단단해진다. 오늘부로 다시 시작이다. 시작, 시작, 시작. 매번 시작을 외쳤고 오늘도 외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인생은 선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결국 선은 점의 모임이다. 그 중에 크게 찍히는 점들은 그 선을 아름답게 해주는 매듭이 된다. 예쁘게 지어진 매듭 감상은 이만하면 됐다.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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