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허리 내놔
오랜만에 쿠팡 당일 알바를 하고 왔다. 10시부터 15시까지 5시간 했다.
경제 활동을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마인드가 썩어 빠진 것 같아, 알바를 좀 해야겠다 싶었다.
근데 다들 꿀 알바만 찾는 건지 단기 알바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냥 홧김에 쿠팡을 신청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허리가 부러질 뻔했다. 쿠팡은 젊은 남자들이 은근히 귀해서 오기만 하면 무거운 짐을 내리는 곳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5시간 동안 피라미드를 짓는 노예처럼 빠레트의 물건을 컨베이어 벨트에 던져 넣는다.
그 짓을 하고 최저시급을 받는다. 뇌를 거의 안 쓰고 몸만 힘들다는 점에서 그 돈이 조금은 납득되기도 하나 아닌 건 아닌 것이다.
이건 사람이 할 게 못된다. 나의 소중한 5시간이 46,000원과 압도적 피곤함으로 퉁쳐진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6번 나온 24살짜리 남자애랑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 2번째까지는 죽을 뻔했으나
3번째부터는 시간도 잘 가고 할 만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갖다 버리라고 했다. 쿠팡에 적응하는 것은 좀 거칠게 말하면 뇌사의 신호다.
뇌가 생각을 멈추고 몸이 적응을 해버리는 단계가 되면 이렇게 된다. 그냥저냥 할만하다고? 미친 소리다. 정신 차립시다잉.
나는 일한 지 2시간쯤 됐을 때부터 다시는 쿠팡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남는 게 하나 없다. 돈도 안되고, 체력은 바닥나고, 자칫하면 다친다.
쿠팡은 노동소득의 바닥에 위치한다. 내가 경험한 알바 중 가장 힘들고, 성장할만한 포인트 역시 딱히 없다.
다른 알바는 하다 못해 고객 응대를 통해 세일즈를 배우거나, 인연을 만날 수라도 있지 이건 그냥 막일 판이나 다름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가? 나도 그러려고 했다.
처음 2시간까지는 혼자 중얼중얼거렸다. '운동 많이 된다. 좋아 좋아.'
근데 빠레트 10개가 넘어가면 마인드가 바뀐다. 운동이고 나발이고 욕밖에 안 나온다. 뼈 빠지게 하는데 빨리 하라 그러면 빠레트를 부수고 싶다.
나는 부수고 싶은 빠레트를 뒤로하고 맞이한 처음이자 마지막, 30분 휴게시간에 무당초코잼이 발린 옥수수 토스트를 오물거리며 책을 폈다.
보도 셰퍼의 '이기는 습관'이라는 책이었다. 시간을 귀중하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 요즘이라 편 것도 있지만, 뇌사를 방지하고 싶었다.
이게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내 생장점이 댕강 잘려나갈 것 같아 반사적으로 책을 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쿠팡 알바에서 살아남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쿠팡은 할 게 못된다.
본인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거나, 거만하다고 느껴져서 스스로 참 교육을 받고 싶다면 해보길 권한다.
그러고 나면 인생은 쉽지가 않구나, 날로 먹을 수가 없구나, 쿠팡은 참 대단하구나, 내가 편하게 살고 있구나 등 여러 생각이 스칠 것이다.
나는 앞으로 쿠팡은 절대 안 할 거다.
쿠팡을 할 시간에 책을 한 줄 더 읽고, 글을 쓰고, 다양한 지식들을 흡수하는 게 낫다.
그래도 이번 경험을 계기로 삶에 긴장감을 갖게 되었으니 만족한다. 내 위치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기초를 잘 닦아야겠다.
이만 쿠팡에게 작별인사를 보낸다. 쿠팡아 잘 지내라. 돈은 입금하고.
p.s. 참고로 쿠팡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오히려 완전 리스펙 한다. 웃자고 쓴 글이니 오해 금지.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