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약관 통합 및 AI 챗봇
오랜만에 회고 글을 쓴다. (지금은 해소되었지만) 업무적으로 일이 많이 몰리며 10월 중순까지 정신없이 바빴다. 주말에는 밀린 업무, 사내외 강의자료 준비 등 여러 작업을 병행하느라 글을 쓸 여유가 없었기도 하고. 다시 일이 몰아치기 전에 조금씩 정리할 목적으로 후다닥 근황 글을 작성한다.
1.
9월 10일 화요일, 새벽에 마이너 배포를 진행했다. (현재 조직 특성상 스프린트 타임박스가 주기적이지 않고, 큰 일정을 정한 후 1~2개월 동안 몰아쳐서 배포하는 형태다.)
해당 배포는 8월 근황에서 일부 언급한 것처럼 솔루션 일부를 통합하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규모가 다소 큰 만큼 서로의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배포 테이블이나 백업 방안 등을 작성해서 대비하고, 배포 전 모여서 상황을 공유했다. 통합하는 솔루션은 한창 잘 운영 중인 솔루션이었는데, 이들의 배포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배포는 새벽에 진행했다.
새벽에 배포하는 만큼 솔루션을 모두 중단하고 배포를 진행했는데, 다행히 배포 직후 발생한 이슈를 새벽 동안 모두 대응한 덕분에 다음 날 오전 7시 반에 배포를 선언할 수 있었다. 내가 속한 제품팀, 데브옵스, 각 제품팀 등 약 40명 정도가 밤을 새우며 참여했던 하루였다. 오랜만에 느낀 색다른 긴장감이었다.
2.
7월, 8월 근황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솔루션을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하고 있다. 미래에는 고객이 통합된 브랜드에서 하위 솔루션을 구매하고, 구매 후의 모든 경험(계약 연장, 계정 연동 등)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솔루션 통합 과정에는 자연스레 '개인정보 처리방침 및 서비스 이용약관 개정' 이슈가 따라오는데, 이를 조율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꽤나 힘들었다. 개인정보 처리방침은 정보보호팀과 협의해야 하고, 서비스 이용약관은 사내 변호사와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직을 이동한 동료 기획자가 대부분 마무리한 덕분에 최종적인 인수인계를 받아 서비스에 반영하는 정도를 수행했지만, 다양하고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마무리하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약관을 서비스에 반영하는 것이 또 다른 어려운 영역이기도 했다.
이번 이용약관의 특징은 솔루션 통합 내용뿐만 아니라 '온라인 결제'에 대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비스 이용, 계약 해지, 환불, 보상, 처벌에 관한 조항들이 추가되었는데, 이 때문에 여러모로 챙겨야 할 게 많았다.
다만 이번 프로젝트는 기능의 파급력(Impact)을 기준으로 모든 사용자 경험을 챙기는 대신 법적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최소한의 기능만 기획하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당장은 사내 변호사, 정보보호팀과 협력해 MVP 수준의 기능을 마련하고 올해 내의 고도화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법정 분쟁이 발생하면 머리가 많이 아프니까..) 전자상거래법 제6조 3항, 제8조 3항이 주요 쟁점이었다.
3.
사이트에 붙일 AI 챗봇을 기획하고 있다. 현재 조직으로 처음 넘어왔을 때부터 맡았던 프로젝트였지만, 맡은 기획 업무의 범위가 확장되며 프로젝트의 우선순위가 다소 밀렸다.
처음엔 AI 챗봇을 A부터 Z까지 모두 기획하고 자체 개발하려고 했다. 시스템 프롬프트를 상황별로 연결하고 답변 트리거와 트리거별 시나리오를 둬서 사용자가 남긴 데이터에 맞춰 챗봇이 다양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말이다. 챗봇은 단순 CS 응대만 하는 게 아니라, 정보수집 같은 여러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일정이 부족하다. 그래서 당장은 POC를 목표로 써드파티 툴을 검토했다. 센드버드라는 서비스다. 조직의 목표에 맞춰 만족해야 하는 상과 챗봇이 만족해야 하는 시나리오를 정리해서 센드버드 측 세일즈 담당자에게 전달한 후, 서비스 측 기술팀장, 세일즈 담당자와 세 명이서 미팅을 진행했다. (기술팀장이 함께 들어올 줄 몰랐다.)
써드파티 툴인만큼 내부 서버와 동기화할 수 있는지가 주 과제였는데, 검토했을 땐 약간의 기술지원이 있다면 대부분 가능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최종적으로 인프라팀에 요청해 계약을 진행했고, 현재는 기본적인 시나리오 세팅 중이다. 프롬프트 설계, 챗봇의 참고 데이터 소스 정리, 특정 자연어를 기반으로 하는 워크플로우 설계 등 여러 작업을 진행 중이며, 꾸준히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4.
이번 조직에서 가장 많이 배우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9월에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이다. 이번 조직에서 맡은 역할은 기술적으로 지식을 확장하거나 광범위한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획이 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지금의 내 답은 이렇다.
"조직 목표가 정해졌을 때, 그 목표가 제시하는 '이상'을 현실에서 달성할 수 있도록 '일이 되게끔' 만드는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가령, 법적 이슈로 인해 사내 변호사부터 정보보호팀, 세일즈팀, 운영팀, 개발팀, 리더 등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을 때, 이 실타래를 풀어가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미팅하고. 때론 기획서를 준비하며 일의 흐름을 만드는 경험이다.
필요하다면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기획한 기능의 발전 단계를 쪼개어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는 스텝을 만든다. 일을 풀어나가는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해관계자 지도'를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현재는 점점 머릿속에 소통 대상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영업팀 총책임자를 공략해야 한다'거나 '실무자 측 파트리더에게 먼저 언질을 주어야 한다' 같은 판단이 이전보다 명확해지는 중.
스타트업에서 중견 기업으로 넘어오면서 느낀 것은, 제품이 이미 운영 중인 만큼 SaaS 환경에서는 단번에 큰 변화를 주는 것보다, 소구점이 있는 기능이나 목표를 캐치하고 이를 조직 목표에 맞춰 잘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0에서 1을 만드는 것과 1에서 10을 만드는 것의 차이를 많이 체감하고 있다.
5.
재직 중인 회사는 보고가 많은 편이다. (내가 속한 조직이 다른 조직보다 특히 보고가 많은 것일 수도 있다.)
다른 대기업,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지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보고는 조직, 프로젝트, 사업의 존속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느낀다. 보고 자료를 기획하고 준비하며, 이를 통해 조직 성과를 경영진에게 어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만 열심히 하는 것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그들이 잘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속한 팀이 조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 행동이 조직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잘 정리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듯.
다양한 리더의 스타일과 판단을 보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조직에서 살아남는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6.
신체와 정신 건강을 잘 챙겨야 함을 느낀 두 달이었다. 9월 추석쯤 갑자기 상반신에 발진이 생겨서 피부과에 방문했다. 피부과에선 몸이 걸리는 감기 같은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고 하지만 스트레스, 면역력 감소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이때 부정적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았다. 조직과 제품팀 실무자의 얼라인을 맞추거나 스프린트 및 프로젝트 관리하고, 제품을 기획하거나 기술인재 활동 등 다양한 업무를 한꺼번에 수행했다. 특히 현재 시기에서 조직의 목표를 잘 정렬하는 게 쉽지 않은데, 상위 조직과 실무자의 간극을 메꾸는 게 제일 어려웠다.
지금은 관리와 실무의 중간 지점을 맞춰가며 다시 내 템포를 찾고 있다. 스스로 한계에 도달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경험이었다.
일이 좋고, 내가 하는 일이 조직과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좋아서 즐겁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조직에서 업무를 진행하면서 생기는 긍정적 스트레스와 부정적 스트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에너지를 유지할 것인가가 관건인 듯하다.
즐겁게 오래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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