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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와 알렉산더 Jan 12. 2024

청년들의 우울한 판타지  - 계층 상승은 다음 생에서


오래된 승용차에서 바라보는 페라리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은, 잔고장이 자주 나는 오래된 승용차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 인생은 지겹고 지긋지긋해서 바꾸고 싶은 것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재계와 연예계 셀러브리티의 삶이 생생하게 대중에게 전달되는 이 시대에,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셀러브리티의 삶은 빠른 속도로 내 차 옆을 지나가는 페라리다. 오래된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페라리를 본다. 그들은 생각한다. ‘다음 생에는 부자로 태어나서 나도 페라리 타야지.’     

재벌집 막내아들     

순양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을 참으며 그들의 불법적인 일을 대행하고 심부름을 해주며 살던 윤현우. 오너 일가는 기업의 비자금 문제를 윤현우의 개인 비리로 만들기 위한 공작을 꾸미고, 해외 출장을 떠난 윤현우를 살해한다. 죽은 윤현우는 1987년 10살의 진도준으로 환생한다. 진도준의 친할아버지는 순양그룹의 창업주인 진양철 회장. ‘재벌집 막내아들’은 순양그룹 창업주의 손자로 환생한 진도준이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윤현우로서 살았던 전생에서 배운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서 진양철 회장의 신임을 얻고 순양그룹의 승계전쟁에서 연전연승하는 내용이 이 드라마의 주요 서사다.      

이미 웹소설의 흥행을 통해 검증된 흥미진진한 서사, 다른 배우들을 압도했던 배우 이성민의 출중한 연기력과 ‘지붕 뚫고 하이킥(2009~2010)’ 이후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결말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겼다. 그러한 글들 사이에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를 슬쩍 갖다놓고 싶지는 않다. 이 글에서는 가난한 주인공이 재벌로 환생하는 드라마가 대한민국 청년들을 매혹시켰던 사회적 원인과 우리나라 판타지 드라마의 고유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환생을 꿈꾸는 청년들     

‘금수저’(MBC), ‘재벌집 막내아들’(Jtbc) 그리고 ‘이번 생도 잘 부탁해’(tvN)까지 재작년 9월부터 작년 7월까지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세 방송국에서 ‘환생’을 주제로 한 판타지 로맨스를 방송했다. 세 드라마의 공통점은 또 있다. 모두 인기 웹툰 또는 웹소설이 원작이라는 점이다. ‘금수저’와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웹툰, ‘재벌집 막내아들’은 웹소설이 원작이다. 환생을 다루는 작품이 큰 대중적 인기를 얻어서 드라마로 제작된 것이다. 세 작품들 중 작년 11월 18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방송된 ‘재벌집 막내아들’은 시청률의 측면에서 여러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최종회의 경우, 전국 유료 가구 기준 시청률이 26.9%였는데, 이는 2022년 미니시리즈 최고 시청률이었다. 역대 JTBC 드라마 시청률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작년 연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토록 환생 판타지에 열광했던 걸까?     

이번 생은 망했어     

나는 그 원인을 ‘재벌집 막내아들’의 타겟 시청층인 우리나라 청년들의 망탈리테에서 찾으려고 한다. 프랑스의 아날학파는 어느 시대에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집합적 무의식을 망탈리테라는 개념을 통해서 포착했다. 현대 대한민국 청년들이 널리 공유하고 있는 망탈리테는 “이생망” 망탈리테이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어. 7년 전인 2016년 연초, 경향신문은 “10명 중 4명이 ‘이생망’ 생각”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러한 정신적 현상을 보도했다. 경향신문이 2015년 12월 20~34세 청년 1,000 명을 대상으로 ‘이생망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라고 물었다. 무려 413 명(41.3%)의 청년들이 답했다. ‘그렇다.’     

그 많던 사다리는 다 누가 치웠을까     

왜 청년들은 이번 생이 망했다고 생각할까? 이유는 명확하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계층 이동성이 과거보다 현저히 약해졌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부모 세대에서는 한 청년이 노력하여 대대로 이어져온 가난을 극복하고 상류층 또는 중산층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분명히 존재했다. IMF 이후 우리 청년들 사이에서 그러한 사회적 공감대는 사라졌다.      

대한민국이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하던 시절에는 일자리가 많았다. 성장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취업이 어렵지 않았다. ‘평생직장’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일을 하며 가족들을 부양했다. 인생은 높은 수준으로 예측 가능했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부모의 부모는 무리해서라도 자녀가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지방 벽지에서 지방 도시의 중·고등학교로 유학을 보냈고, 지방 도시에서 서울 대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그 시절에는 교육을 마치면, 양질의 일자리를 얻어서 평생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기대가 존재했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사례들이 주위에서 쉽게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들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중산층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중간 소득 일자리들이 크게 줄었다. 고용의 안정성도 약화되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정규직 일자리를 얻어 정년까지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었던 부모 세대와 달리, 현대의 많은 청년들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불안정한 삶을 살아간다. 많은 중산층 구성원들이 계층적 하락을 경험했고, 중산층에 간신히 남은 사람들도 실존적 불안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이 퇴락한 결과 계층 간 간극은 계속 커지기만 했다. 삼 년 넘게 지속된 소위 ‘코로나 시국’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적지 않은 수의 청년들이 고독과 가난과 절망을 호소하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뉴욕 브롱스에서 전학을 온 흑인 친구가 있었다. 뉴욕의 소위 “게토” 출신인 그 친구가 하루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게토에서 태어난 아이가 게토를 벗어나는 방법은 딱 둘 밖에 없어. 농구를 해서 마이클 조던이 되든지, 힙합을 해서 제이지(Jay-Z)가 되든지. NBA 스타가 되거나 슈퍼스타가 되지 않으면, 평생 게토를 벗어날 수 없어.”       

많은 청년들에게 그들의 계층이 뉴욕의 게토와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영화 ‘기생충(2019)’의 결말은 묵시적으로 비극적이다. 살인자가 되어 지하실에 숨어살게 된 기택이 모스부호로 남긴 편지에 아들 기우가 답한다. 돈을 벌어서 기택의 아버지가 갇힌 대저택을 사겠노라고. 그 날에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된다고 말한다.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본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기택은 영영 지하실을 빠져나오지 못하겠구나. 왜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을까? 기우가 부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그토록 단정적으로 기우가 부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까? 기우가 소위 명문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고 – 극중에서 그는 연세대학교 재학 증명서를 위조한다 – 그의 부모가 궁핍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의 근거는? 우리의 경험이 근거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상류층의 자녀는 성공하고 풍족하지 못한 집안에서는 가난을 대물림하는 수많은 사례를 미디어에서 또는 주위에서 목도해왔다. 만일 기생충의 후속편에서 기우가 정말 부자가 되어 기택이 숨어있는 저택을 구입한다면, 그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일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판타지 작품들 중에는 계층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많다.     

대한민국의 판타지는 무엇이 다른가     

판타지 장르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대중적이고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장르다.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비롯해서 “이티”와 “해리포터”에 이르기까지 상업적으로 그리고 비평적으로 크게 성공한 판타지 영화들이 많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들은 호빗, 요정, 오크, 용 등 동화적인 존재들이다. “이티”의 주인공은 외계인이며, “해리포터”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마법사들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판타지 장르의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오징어게임(2021)’이 있다. 해외에서는 ‘오징어게임’을 ‘디스토피아적인 판타지’로 자주 규정한다.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말이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드라마인 ‘오징어게임’과 ‘재벌집 막내아들’이 많은 특징을 공유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두 작품의 공통점들은 다음과 같다.     

1.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작품의 주인공인 ‘성기훈’과 ‘윤현우’는 - 진도준의 서사는 윤현우의 상상이었다는 것이 16화에서 밝혀진다 – 모두 결점이 많은 인물이다. 성기훈은 어머니의 돈을 훔쳐서 경마장에서 도박을 하며 사채업자들로부터 쫓긴다. 무능력한 그는 사랑하는 딸이 새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떠나는 것을 참담하게 그러나 무기력하게 방관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윤현우는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동생을 위해서 가난한 집안의 가장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경제적 제약은 그로 하여금 온갖 수모를 견디며 올바르지 못한 일들을 하게 만든다. 개인적 능력이 출중한 그가 자신의 능력을 떨치는 대신 졸렬하고 더러운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이유도 그의 계층 때문이다. 한국의 판타지를 판타지로 만드는 장치들은 초현실적인 존재나 배경, 초능력 같은 것들이 아니다. 한국의 판타지는 456명이 참가하는 데스 게임이나 환생과 같은 초현실적인 설정이 등장하되, 전반적으로 현실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2. ‘갑’과 ‘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등장한다. ‘갑’은 ‘을’을 자신과 대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오징어게임’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데스 게임들은 억만장자로 추정되는 ‘호스트’와 ‘VIP’들의 유희에 불과하다. 1화에서 성기훈은 경마장에 가서 도박을 한다. ‘VIP’들에게 성기훈을 비롯한 456명의 게임 참가자들은 ‘경마장의 말’에 불과하다. 마지막화에서 성기훈은 게임의 실무 책임자인 ‘프론트맨’에게 “나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라고 선언한다. ‘갑’들에게 ‘을’들은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 죽어도 되는 존재들이다. 윤현우는 ‘갑’인 재벌을 보필하는 ‘을’로서 오너 일가로부터 폭력과 모독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최근 불거진 ‘교권 침해’ 문제도 많은 경우 교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갑질에서 기인했다. 국민들이 ‘갑’과 ‘을’로 위계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며, 일상적인 갑질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특성이 드라마에 반영된 것이다.     

3. 주인공이 막대한 부를 획득하게 된다. 외국의 판타지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이는 대한민국 판타지의 고유한 특성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주인공 피터 파커는 시리즈 내내 시종일관 가난하다.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은 명문가 출신으로 억만장자의 아들이다. 그는 부를 늘리기는커녕 배트맨 활동을 위해서 자신의 부를 아낌없이 소비한다. ‘이티’나 ‘해리포터’에서도 부자가 되는 주인공은 없다. ‘오징어게임’과 ‘재벌집 막내아들’은 다르다. 데스 게임의 우승자로서 성기훈은 상금으로 456억 원을 받고 부자가 된다. 윤현우는 ‘재벌집 막내아들’로 환생함으로써 거부가 된다. 이러한 ‘벼락부자 서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방증한다. 다른 모든 가치들보다 물질적 성공을 숭상하는 가치관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점은 두 주인공이 부를 획득할 때 큰 운이 작용했다는 점이다. 성기훈은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딱지를 든 양복남’을 만난 것을 계기로 게임에 참가하며,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도 행운이 여러 차례 개입했다. 윤현우가 진도준으로 환생한 것도 순전히 행운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데스 게임에서 우승한다는 판타지적 서사나 환생과 같은 신화적 서사를 동원하지 않고서는 계층 이동의 이야기를 설득력이 있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계층 상승의 서사는 이제 판타지의 세계에 속하게 되었다. 양극화가 극심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무의식은 이런 식으로 드라마에 방영된다.     

한국에는 개츠비가 너무 많아     

영화 ‘버닝(2018)’에서 주인공 종수는 “한국에는 개츠비가 너무 많아”라고 말한다.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부자들이 한국에 많다는 뜻이다. 나는 이 대사를 다른 의미로 활용하고 싶다. 부자가 되기를, 상류층에 편입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청년들이 우리나라에 정말 많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처럼 말이다. 청년들에게 물질적 풍요는 개츠비가 건너다보는 이스트 에그의 녹색 불빛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청년들은 그 꿈이 허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념한 채 살아가면서 이따금 환생을 상상한다.      

가난했던 개츠비는 미국의 부촌인 이스트 에그 사람들의 삶이 어떤지 큰 부를 획득하기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데이지의 남편인 톰 뷰캐넌이 어떤 집에서 어떤 차를 타는지 알지 못했다. TV와 라디오와 같은 대중 매체가 보급되기 이전에 살았기 때문이다. 21세기 가난한 대한민국 청년은 개츠비의 삶이 어떤지 생생하게 안다. TV를 틀면 개츠비가 사는 한강뷰 펜트하우스와 그가 타는 페라리가 등장한다. 아침에는 이 개츠비가 나오고 저녁에는 저 개츠비가 나온다. TV 속 개츠비들을 보며 청년들은 생각한다. ‘한국에는 개츠비가 너무 많아.’ 개츠비는 현생에서 상류층으로 진입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었다. 청년들은 현생에서의 계층 상승을 감히 꿈꾸지 않는다. 그들은 상상한다. ‘다음 생에는 재벌로 태어나서’로 시작하는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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