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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와 알렉산더 Jan 15. 2024

21세기에 20세기적 낭만은 가능할까?

'사랑을 낙엽을 타고'를 보고

어젯밤에 어머니와 둘이 맥주를 마셨다.

영화가 자주 화제에 올랐다.

내가 그저께 본 예술영화도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나는 어머니께 사람들이 예술영화를 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평생 결정적 순간을 찍기 위해서 노력했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한 말이에요.

예술영화는 일상을 스크린에 담죠. 바꾸어 말하면, 예술영화는 일상적 순간을 예술적 순간으로 승격시키는 거죠.

우리의 삶이 어떻게 할리우드 영화들처럼 비일상적이고 특별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겠어요.

범속한 일상도 아름다울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예술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런 영화를 보고나면, 얼마간 나의 일상이 영화 같다는 묘한 느낌이 들어요.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져요.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럿 있는데, 이 느낌을 못 잊는 것도 그 이유예요.


내가 그저께 본 영화는 핀란드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äki)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Fallen Leaves)다.

(카우리스마키의 전작들인 '과거가 없는 남자', '성냥공장 소녀', '황혼의 빛'과 '레닌그라우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도 앞으로 네 편의 비평문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Hammering Man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로 나온 후 이 거대한 조형물을 따라 걸어오면 흥국생명빌딩이 나온다.

(이 조형물의 이름은 'Hammering Man'이다. 미국 조각가 Jonathan Borofsky의 작품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노르웨이 릴레스트룀 Lillestrøm, 미국 시애틀 등 여러 곳에 전시돼있다. 서울에 위치한 이 22m 높이 Hammering Man이 세계 최대 Hammering Man이라고 한다. Hammering Man은 전 세계 노동자를 상징한다고 한다.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35 초마다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하는데, 주말과 공휴일에는 쉰다고 한다. 광화문 회사원의 삶을 사는 미국인 친구...)


35초에 한번씩 망치질을 하며, 광화문의 직장인을 대변하듯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동∙하절기 시간대 조정/토,일,공휴일 쉼) 망치질을 통해 노동과 삶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그 건물 지하에 '씨네큐브 광화문'이 있다.


서강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종종 이 곳을 찾았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이나 후에 여기서 영화를 봤다.

서강대 근처 공덕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광화문역까지 7분이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출신 영화감독 요아킴 트리에(Joachim Trier)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와 벨기에 출신 형제 영화감독 다르덴 형제(Dardenne brothers)의 '더 차일드'(2005)를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감상했다.

석사과정을 수료한 이후로는 한동안 찾지 않았던 씨네큐브를 지난 주 금요일에 오랜만에 방문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보러.

영화관에 걸린 '사랑은 낙엽을 타고' 포스터
영화 티켓. 나는 혼자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남자, 홀라파. 어느 날 그는 동료 노동자의 권유로 함께 노래방과 바가 결합된 듯한 곳인 핀란드식 '가라오케'를 찾는다. 홀라파는 이곳에서 안사를 만난다. 둘은 오래 시선을 교환한다. 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둘은 우연히 다시 만난다. 안사가 일하는 바 앞에서. 그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홀라파는 카페에서 힙 플라스크에 담긴 술을 커피에 타 마신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가 아닐까. 이후 둘은 영화를 보러 간다. 영화는 짐 자무시(Jim Jarmusch) 감독의 '데드 돈 다이'(The Dead Don't Die). 애덤 드라이버의 얼굴이 화면에 나온다. 극장에서 나온 홀라파는 안사에게 이름을 묻는다. 안사는 다음에 알려 주겠다고 답한다. 안사는 종이에 자신의 번호를 적어 홀라파에게 준다. 안사와 헤어진 직후에 홀라파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낼 때 그 종이는 주머니에서 나와 거리에 떨어진다. (담배가 문제다.) 이름도 모르고 번호도 모르는 안사를, 홀라파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핀란드의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인 헬싱키에서. 인구가 67만 명이 넘는 헬싱키에서 말이다.


낭만.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를 한 단어로 축약한다면 '낭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대표작 '과거가 없는 남자'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보며 다시 했더랬다. 편리한 현대의 문명이 어쩌면 앗아갔을 지도 모르는 낭만을 카우리스마키는 영화적으로 복원한다. 우선 미장셴을 살펴보자. 영화 속 인물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집에는 커다란 TV도 없다. 두 주인공은 여가 시간에 라디오를 듣는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말 그대로 라디오를 통해서 말이다. 두 주인공이 첫 데이트 이후에 번호를 교환하지 않아서 - 남자가 여자의 번호를 모르기 때문에 - 발생한 에피소드는 어쩌면 비현실적이다. 특히 2024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주인공들이 나와 동시대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두 주인공이 듣는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전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감독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자신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라고 밝혔다. 라디오가 전해주는 참혹한 전황은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존속하는 야만을 드러낸다. 야만은 전장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 현장에도 존재한다. 두 주인공 홀라파와 안사는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다. 홀라파에게 작업 효율을 높일 것을 주문하는 관리자에게 그는 압축기를 교체해 달라고 말한다. 압축기 대신 차를 사야 한다고 답한 관리자에게 홀라파는 말한다. 운전면허부터 따라고. 그 관리자는 이후 작업을 하다가 다친 홀라파를 보며 인력 충원과 봉급 문제를 걱정한다. 그에게 괜찮은지 묻지 않는다. 그가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하지 않는다. 홀라파와 안사가 일하는 곳의 관리자들은 쉽게 노동자를 해고한다. 야만은 우크라이나 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 현장에도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는 자본 극대화의 논리에 매몰된 나머지 노동자의 복리에는 무관심한 자본을 고발한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프롤레타리아 또는 노동계급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사랑은 낙엽을 타고'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과거가 없는 남자'의 프롤레타리아 출신 인물들처럼,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노동자들도 서로에게 다정하고 서로를 돕는다. 노동자를 바라보는 감독의 따스한 시선이 영화 전반에서 느껴진다. 주인공들이 마주치는 이웃들이 모두 선하게 그려진다는 점에서 한 편의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힘없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야기. 이 영화를 '사회주의적 동화'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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