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의 미학
모호한 걸 좋아한다. 특히 예술에 관한 한, 모호하다는 것은 미덕이라고까지 생각한다.
내가 박찬욱 감독의 팬인 이유들 중 하나는 그 역시 모호한 걸 좋아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의 제작사 이름부터 '모호필름'이 아니던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박 감독의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2002)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유괴가 있어. 착한 유괴와 나쁜 유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 중에 악인은 없다.
완범(신하균 역)도, 영미(배두나 역)도, 완범의 누나도, 심지어 복수의 주체인 동진(송강호 역)까지도, 모두 선하다고 평할 수도 있을 만한 인물들이다.
착한 사람들이 우연히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서 죽고 죽이며 파멸하는 이야기.
나는 이러한 그리스 비극적 서사를 좋아한다.
선한 주인공이 고통을 받을 때 비장미와 공감의 여지가 극대화된다.
홍의정 감독의 영화 '소리도 없이'(2020)는 '복수는 나의 것'과 닮았다.
아이를 유괴하는 일과 유괴의 결과로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영화의 서사적 골자라는 점.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하나같이 훌륭하다는 점.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선한 인물인지, 악한 인물인지 판별하기 어렵다는 점.
짙은 선악의 모호성이 관객의 마음에 짙은 비애를 남긴다는 점.
나는 <소리도 없이>(2020)를 연출한 홍의정 감독 팬이기도 하다. 작품이 좋을 뿐더러 장르영화에 대한 접점도 있어 다음이 기대된다. - 봉준호 감독
1982년생인 홍의정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멀티미디어영상과에서 예술사 학위를 받았다.
한예종을 졸업한 뒤 2년 동안 광고와 뮤직비디오 연출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이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 런던필름스쿨(London Film School)에서 석사 학위(MA Filmmaking)를 받았다. (런던필름스쿨의 석사 과정은 2년이다.)
런던필름스쿨 - 2019년 미국의 유명 연예매체인 '버라이어티'는 런던필름스쿨을 세계 최고의 영화학교들 중 하나로 꼽았다. 당시 함께 선정된 영화학교로는 미국의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벨몬트대학교(Belmont University), 보스턴대학교(Boston University),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드폴대학교(DePaul University), 노스웨스턴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 중국의 북경전영학원(北京电影学院 / Beijing Film Academy), 프랑스의 라페미스(La Fémis)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한국영화아카데미도 명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