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 없이 영속하는 신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아폴론에게 기도하는 가수를 본 적 있는가?
면접을 보기 전에 아테나에게 기도하는 취준생은?
고인을 위해 하데스에게 기도하는 유가족은?
고대 그리스의 신들을 신으로서 믿는 현대인은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신화는 문학적 소설이지, 종교적 경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스신화는 말 그대로 신자 없이 영속하는 신화이다.
종교로서의 그리스신화는 우리나라가 삼국시대였을 시기에 이미 사멸했다.
문학으로서의 그리스신화는 고전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페르시아의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미트라교, 켈트족의 드루이드교와 같이 많은 고대 종교들은 그저 소멸했을 뿐 인류의 지적 자산으로서 또는 고전으로서 존속하지 못했다.
왜 그리스신화는 이토록 장구한 세월 동안 널리 사랑받는 것일까?
우선, 그리스신화는 보편성을 담지한다.
세계적으로 탁월한 상업적 성취를 이룬 문화적 컨텐츠들은 공히 인류적 또는 시대적 보편성을 담지한다.
비근한 예로서 '강남스타일'(2012)과 '오징어게임'(2021)을 들 수 있다.
전자는 웃음과 춤이라는 지극히 근원적인 요소 덕분에 성공했다.
익살맞은 뮤직비디오가 유발한 웃음은 쉽사리 국경을 초월한다.
인류가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 종(種)으로 공유하는 웃음의 보편적인 코드라는 게 있기도 하고, 그 뮤직비디오의 유머가 블랙코미디적이거나 해학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유머이기 때문이다.
춤은 우리의 원시인 조상들 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추는 것이니, 춤에는 동물학적 보편성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오징어게임'은 저성장시대와 물질문명의 시대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선진국 시민들이 공감하고 그럼으로써 몰입할 수 있는 시대적 또는 사회적 보편성이 큰 작품이었다.
그리스신화가 지닌 보편성은 실로 탁월하다.
그리스신화 역시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성찰하고 사색하게 만드는 힘이 매우 강하다.
필자는 시시포스 이야기를 대단히 좋아한다.
그 이야기는 존재와 행위의 의미를 - 때로는 자신의 생명 이상으로 -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간에게 무의미라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참혹한 것인지 일깨운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군대에서 가장 괴로운 일이 땅을 파고 메우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필자는 공군 출신이라서 육군을 잘 모른다.)
21세기 20대 초반 육군 일병도 2천 년도 더 전에 쓰인 그리스신화를 읽고 동감하고 감응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스신화의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성은 정말 가공할 정도이다.
두 번째는 등장인물 또는 캐릭터의 결핍이다.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기독교의 하느님 또는 예수님, 불교의 부처님, 이슬람교의 무함마드는 그리스 신들과 무엇이 다를까?
전자는 하나같이 완전하지만, 후자는 불완전하다.
열두 신들 중 최고신인 제우스부터가 바람둥이니까, 더 이상 부연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음악은,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결핍의 소산인 것만 같다.
김훈 선생님의 말이다.
문학에서 그리고 예술에서 모든 매력적인 캐릭터는 결핍을 지니며, 두드러지게 불완전하다.
왜?
모든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오징어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역)은 선하지만 전적으로 선하지는 않다.
어머니의 돈을 훔치고, 그 돈을 경매장에서 탕진하고, 치매에 걸린 것으로 보이는 오일남(오영수 역)을 속여 게임에서 이기는 등 드라마는 성기훈이 저지르는 지루한 짓들을 여러 번 보여준다.
그는 분명 불완전한 인물이다.
다만 그는 본성이 선한 인물이며, 작품 후반부의 결정적인 순간들에서 - 위대하다고까지 평할 수 있을 만한 -선한 선택들을 한다.
1980년에 개봉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Raging Bull (분노의 주먹/성난 황소)'.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로버트 드 니로 역)은 한심하고 추한 인물이다.
제이크는 의처증이 있어서 가정에서 폭력적으로 굴며 소녀와 불륜에 빠진다.
그렇게 추잡한 작태를 일삼는 사람의 내면에 어떻게 위대한 사람이 숨어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영웅성이 어떻게 끝끝내 발현되는지, 이 위대한 영화는 보여준다.
캐릭터는 완전해서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불완전해서 매력적인 것이다.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