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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와 알렉산더 Jan 23. 2024

연필의 시간

1월  23일

연필이 젊음처럼 줄어들던 시간. 차분하게 글을 쓰다가도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연필심이 뚝뚝 부러지던 시간. 필통에 화살처럼 모여있는 연필들이 공포심을 호소하던 시간. 연필이란 화살을 과녁을 향해 쏘아대던 시간. 과녁이 점점 멀어지고 작아진다고 푸념하던 시간. 그래도 그때의 젊은 눈에는 과녁이 또렷했던 시간.


연필의 시간이 지나고 나의 마을에도 해넘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현재나 미래를 망각한다. 우리는 열심히 과거를 착취한다. 이곳의 낮은 어두워도 밤하늘에는 작은 것들이 형형하다. 잠이 줄어든 마을 사람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 작은 것들을 채취한다. 아침이면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앉아 작은 것들을 다듬는다. 이따금 작은 것들을 훔친다는 도둑의 소문이 들려온다. 밤하늘에 무언가가 휘영청 떠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무언가를 각기 다르게 독해한다. 이 고장 특산품을 팔러 어제 장에 나간 무리가 돌아온다. 마을은 자꾸만 작아진다. 우정을 굶은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든다. 공복의 배로 고독의 십자가를 향해 간증한다. 장로 하나가 어제 개종했다. 몇 년에 한 번씩 연필의 시간을 재건하려는 사람이 등장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마을을 찾았다가 떠나간다. 연필심처럼 주민들 키가 줄어든다. 가끔 이방인이 지우개를 들고 찾아와서 사람들을 지우고는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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